6.25 참전 미군 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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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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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금요일 아침부터 취재 나갈 준비에 분주했다.
그 전날 마무리하지 못한 일도 급히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프리시디오(in Presidio of San Francisco)는 자동차 주차장이 멀고 스트리트 주차도 쉽지 않은 곳이다.
서둘렀지만 행사장 주변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라 다소 먼 거리에 위치한 주차장을 찾았다.
주차를 하고 주차료 티켓을 빼어 자동차 대쉬 보드에 올려 놓고 오는데 한 미국 노인 부부를 만났다.
옆에 아주 곱게 늙은 할머니가 남편의 행동이 좀 안쓰러운 듯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참전비 기념행사에 왔느냐고 물으니 주차 미터기와 씨름을 했는지 편치 못한 표정으로 “그렇다’면서 해마다 오는데 갈수록 몸이 힘들다고 했다.
겉으로 보아선 90살이 넘어 보였는데 몇 살이냐고 물으니 89세라고 했다.
거동은 아주 자유스럽게 보이지 않았지만 정신은 맑은 듯 했다.
같이 걷다가 층계 내려가기 전에 필자도 멈추니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한국 전쟁 후 돌아와서 상당 기간 전쟁의 공포와 전사자 목격으로 인해 후유증에 시달려 자기도 모르게 한국전쟁 자체를 잊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또한 제대 후에는 먹고 살기 바쁘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기르다 보니 이렇게 반백이 되었다고 푸념했다.
과거와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젊은 시절에는 Korean War의 K자도 생각하기 싫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한국 전쟁의추억이 피어나기 시작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전우들의 안부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사진 왼쪽 끝이 존 허 박사(콘트라 코스타 박물관 커미셔너) ,6.25 한국 전쟁 중 탱크병으로
전투에 참가했다. 남어지 두 분은 미군참전 용사
3만여 전사자
한국전쟁은 무척 비참했고 미군 전우가 3만여 명이 넘게 희생되었으며 부상자도 10만여 명이 넘는 처절한 전쟁이었지만 목적은 뚜렷했다고 말했다.
전쟁 당시에는 왜 알지도 못하는 작은 나라에 와서 우리가 죽어야 하나.
욕설이 나왔고 위정자들을 원망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따른다는 평범한 진리를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제 시간이 좀 지나서 앞장 서려고 하니 어렵게 얻은 자유이니 한국민은 반드시 우리 미군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잘 지켜야 된다는 말을 했다.
기자는 취재를 계속하면서 그 노인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미국 젊은이들 피의 값으로 지킨 자유와 민주주의 아니겠나.
한국민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다면 미군의 희생은 무의미해지고 어떻게 전사한 영혼들에게 설명하겠나.
90세 노병들
한국전쟁 참전비 앞에서 열리는 6.25 한국전쟁 기념식에는 되도록 가려고 한다. 작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념식 자체가 취소 되어올해 열린 행사가 더욱 뜻 깊었다.
올해가 한국전쟁이 난지 71년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살 또는 19살에 입대해 지금까지 생존한 용사들이 대부분 90살 전후의 나이다. 지금 백세 시대라고 하나 90살이면 참으로 많이 드신 나이 아니겠나.
그런 노병들이 뜻깊은 행사를 위해 힘든 몸으로 또는 워커를 끌면서 참석하는 미군 용사들을 보면서 정말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 뿐이었다.
젊은 시절 전쟁터에 나가서 살아 왔으니 대견하겠지만 앞서 노인의 말처럼 전쟁 후 극심한 공포증으로 상당히 시달려 많은 미군 참전용사들이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오늘 기념식에 온 그들은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전우가 오겠지 하는 반신반의의 불안한 마음으로 오신 분도계셨을 것이다.
조금 지나 기자 눈에 비친 두 노인이 서로 악수하고 그 것으로 부족한지 포옹을 하며 반가워했다.
아직도 코로나 감염증으로 거리두기를 하는데 두 노병 사이에선 코로나바이러스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을 것이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와 만남 자체가 축복일지 모른다.
한 시간여 취재 기간 노병들은 스스로 자유 민주주의를 자신들이 지켰다는 자부심에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10대에 생과 사를 경험한 소년병들이 이젠 90살의 백발이 되어 한국의 발전과 경제적 부흥을 기원하고 있다.
한국전쟁 참전비는 샌프란시스코 프리시디오 내 최고 명당자리에 위치해 있다.
고개만 들면 금문교가 보이고 태평양의 시원한 바람을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코 앞에 딘 소장 묘지
이곳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샌프란시스코 국립묘지가 있다.
그곳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딘(William Frishe Dean) 소장의 묘지도 있다.
그의 묘지는 장군 묘 같은 곳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병 묘 가운데 섞여 있다.
딘 장군 자신이 사병들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는 말이 있지만 딘 소장의 묘소를 보면 안타까운 심정이다.
딘 소장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출신으로 학군단으로 입대해 소장으로까지 진급한 직업 군인이다.
한국전쟁 참전비에 대한 우리 공동체의 관심과 사랑은 generational river처럼 다음세대에게도 영원히 흘러갈 것이다.
<hdnewsu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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