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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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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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안 (내과 전문의 / 라스베이거스 가주)

오늘은 어느 죽음에 대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그 죽은 생명체는 글 후반부에 나옵니다. 약 10년 전에 일입니다. 83세, 곱게 나이 드신 분인데, 아주 심한 mitral regurgitation이라는 심장 밸브 병이 있으셔서, Lasix라는 이뇨제를 정맥 주사 drip으로 24시간 계속 맞지 않으면 숨이 차서 괴로워하시는 상태에서 저를 담당의로 보게 되셨습니다. 그 밸브 병 때문에 병원 또 SNF (Skilled Nursing Facility) 입원/퇴원 반복하신 지 2년 넘었고, 고령이고 위험군이라 흉부외과 의사들은 수술을 권하지 않았고, 환자분과 가족들도 체념한 후였습니다.또다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더 이상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Iv had a good life.” 한국말로 젤 적당한 의역은 “전 살 만큼 살았습니다” 전혀 슬픈 표정이 아니었고, 침착하고 ‘덤덤’하게 말씀하시더군요.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데 약을 투여할 수는 없습니다만, 여러 상의 끝에, 투여를 중단하기로 했고, 그 전날 저녁, 가족들 지켜보는 데서, ‘오늘 밤이 마지막 저녁 식사가 될 것 같습니다. ‘원하시는 것 무엇이든지 드시도록 해놓겠습니다.’ ‘I want a hamburger.’ 그다음 날 아침, 약 투여가 중단되고 한 시간도 못 넘기고 돌아가시더군요.
대부분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은 의식을 잃었거나 혼미하신 분들입니다. 이 환자분같이 또렷또렷하게 세상 떠나기 전날까지 의식을 가진 분들, 흔하지 않습니다. 이 환자분이 저의 기억에 뚜렷이 남은 이유는 그 햄버거 대화 때문입니다.

8년전, 와이프가 크리스피가 두살이었을 때 찍은 사진
사실, 그날 저녁, 그 병실에 있던 환자의 조카가, “She can have anything? Can I bring her…?”이라고 묻는데 그의 아내가 질문을 못 끝내게 막았습니다. (그 환자는 자식들이 없어서 조카와 조카의 가족들만 있었습니다) 그 후로, 문득문득,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그 조카가 자기 aunt병실로 가져와서 마지막 밤에 주고 싶어 했던 ‘선물’이 무엇이었을까 상상해 보곤 했습니다.
입원 전문 전담의를 하면서 수많은 죽음을 보아왔고, 그 죽음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 중의 하나는, ‘지금 하라’입니다. ‘지금 하라, 언제 죽을지 모르니.’ 그래서, 저는, 제 아내와 시간 나는 대로, 여기저기 여행 다녔고, 몰디브스라는 곳에는 네 번씩이나 가서, 만타 가오리, 돌고래, 또 고래, 상어들과 수영/스쿠버도 했고 어설프게나마 비디오도 많이 찍어댔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은, 한국에 자주 나가서, 선생님들 찾아뵙고, 학창 시절 친구들 찾고 만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았던 경험도 하게 되더군요.)
물론, 저의 이 ‘삶의 철학’은 많은 범죄자/사기꾼들의 ‘철학’이기도 할 겁니다. 다시 말해서, 미래야 어떻게 되었든, 지금의 쾌락을 좇는 ‘근시’적인 선택이 일관된 삶 얘기입니다. 또, 허언증 환자 때문에 시달림을 당하신 분들도, 공감하는 바가 클 겁니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한테 잘 나 보이려고, 앞뒤 맞지 않는 ‘뻥’을 튀어놨다가, 나중에 그걸 지적하는 이들이 있으면, 그 건 자기에 대한 ‘모함’이라고 언성 높여 화내시는 분들, 많은 분이 한두 번은 겪어보셨을 겁니다. (그런 허언증 환자를 친 부모로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삶의 지혜는 ‘발란스’입니다. 중/고등 때 배웠던 ‘중용’입니다. 의학에도 적용됩니다. 면역 시스템이 너무 약하면 큰일이지만, 너무 강해도 큰일입니다. 물을 안 먹으면 안 좋지만, 너무 많이 마셔도 polydipsia-induced hyponatremia 라는 상태를 유발하게 됩니다.
본론입니다. 10년 전 아내가 돼지를 원한다고 해서 그러자 하고, 아기 돼지를 구해서, 지금까지 같이 살아왔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지만, 다 생략하고, 배경 설명만 잠시 해 드리겠습니다. 애완동물로 키우는 돼지들은 12~15년 평균 수명이고, 10살이 넘는 돼지들은 75%가 암에 걸린다는군요. 저희 돼지 (이름 크리스피) 는 10살 1달이었고, (추측하건대) 암에 걸려서 장이 막혀 죽었습니다.
절 슬프게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제가 너무 귀찮아했습니다. 돼지들은 끊임없이 먹기 때문에 음식 조절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수의사가 그러더군요.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돼지 하나는 너무 많이 먹여서 무게가 너무 많아서 움직이지를 못하게 되었답니다. 그게 너무 두려웠던 아내는, 꼭 ‘적당량’의 사료를 먹이고 가끔 다이어트까지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적당량’이라는 게, 인간들도 조절 못 해서 절반이 넘게 비만인데… 그리하여, 크리스피가 있는 backyard에 나가기만 하면, 음식을 더 달라고 ‘목청’ 높여 울어댔고, 그 소리가 너무너무 듣기 싫고/괴로웠습니다. 또 거의 매일 들어야 하는 ‘울음’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회사 말고도 두세 기관에서 직책을 맡고 있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크리스피의 뒷감당을 나한테 혼자 떠맡겼다는 생각 때문에 화도 나고 비참하게까지 느껴졌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 팔자에도 없는 돼지를 키우게 되었나…’ 두 번째, 돼지들이 타고나는 ‘본능’인 rooting이라는 것을 마음껏 하게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울타리 밖으로 나가게 하면, 나무/shrub 주변을 너무 파헤쳐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크리스피는, 지난 10년의 대부분을, 울타리 뒤에 앉아, automatic feeder에서 나오는 음식을 기다리면서, 내가 가져다주는 ‘snack’들을 기다리며, 가끔 우리와backyard를 산책하는 것을 기다리면서, 울타리 안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죽었습니다. (다행히, 우리에게 팔려 오기 전에, neutered는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았습니다. 크리스피가 결국은 이러다가 죽으리라는 것을. 또, 크리스피가 이렇게 죽으면, 그 무한한 후회가 곧 따르리라는 것. 그래서, 한 달에 두어 번씩, 크리스피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것을 해 줬습니다. 그게 뭐냐고요? 크리스피가 2살 즈음 되었을 때, 한 번은, 무슨 파티하고 남은 고급 케이크 한 점을 주었더니, 그렇게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지난 십 년 동안, 한 달에 두어 번씩, 인간들도 자주 먹으면 비만/당뇨의 지름길인 케이크, 도넛, 쿠키, 파이, 또 미국 사람들이 먹는 ‘카블러’라는 디저트, 등등, 꼬불쳐 놨다고 줬습니다. 너무너무 좋아했고, 어떻게 보면, 이것이 크리스피의 단 하나의 낙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본론과 좀 빗나가는 얘긴데, 해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3-4년 전 한국에 갔을 때, 고등 때 활동했던 보이스카우트 선배/동기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들이 하는 밴드라는 것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술 마시는 얘기만 해대서, 그걸 지적했습니다. ‘후배들 보는데 부끄럽지 않아요?’ 어느 선배가 (제가 특별히 잘 따랐던 분) 제게 그러더군요. ‘술이 없으면 숨을 쉬고 살 수가 없다.’ 그 말이 그렇게 가슴 깊게 또 아프게 다가오더군요.
다시, 크리스피 얘기입니다. 병원 가기 하루 전, 아내와 나는, 직장에 연차 (PTO)를 내고, 뒷 마당에서, 크리스피가 마음껏 왔다 갔다 하게 해주었습니다. 증상으로 보아 장이 막힌 것을 알았고, 통계로 보아, 세상에 머물 날이 며칠 안 남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쁘게 단장해 놓은 나무 밑을 다 파헤치고 앉더군요. 그리고는 우리 앞에 와서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하다가 구토를 했습니다. (인간에게도 장이 막히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그 다음날 병원에 입원해서, 5일 후,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죽기 전, 병문안 갔을 때, 마약성 진통제를 맞아서, 고통을 나타내는 행동은 안보였지만, 의식이 혼미한 상태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나를 알아보더군요. (제가 17살 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시기 전, 혼미한 의식 상태에서 잠깐 깨어나셔서 사람들이 다 달걀같이 길쭉이 보인다고 웃으셨는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무서웠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 10년간 제가 몰래 줘왔던 그 달고 단 음식들이, 크리스피의 ‘명’을 재촉하였는지도 모릅니다. 12~15년 평균 수명이라는데 10살에 죽었으니, 빨리 죽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제겐 아무 후회도 없습니다. 저의 후회/슬픔은, 위에서 언급한, 그 타고난 본능인 rooting을 마음껏 못 하게 해주었다는 것, 살아 있을 때 좀 더 따뜻하게 해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지금 그 슬픔/후회를 달래는 것이 바로 저의 ‘몹쓸’ 행동이랍니다. 크리스피는, 다른 돼지들은 꿈에도 먹어보지 못할 것들, 다 먹어봤답니다…우리 장모가 유타까지 가서 직접 따와 정성스럽게 만든 apple cobbler, 화려하고 비싸서 특별한 날에만 먹는 Nothing Bundt Cake, 또 크리스마스 때면 회사로 주야장천 가져오는 그 느끼하고 달고 단 고칼로리 home made 쿠키들 등등…너 이렇게 죽을 줄 알고, 네 아버지가 조금씩 ‘준비’를 해 온 거였어. 네 아버지가 의사 노릇을 하면서, 죽는 환자들 보면서 절실히 느꼈던 거야…살아있을 때 미리미리 조금씩 조금씩 해줘야 한다는 걸. 그런데, 그렇게 했어도, 후회되고 슬프단다. 하지만, 네가 케이크에 주둥아리 파묻고 정말 돼지처럼 먹던 것 생각하면…그래도 좀 마음이 나아져.
그런데 말이다.…너나 나나…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는 게…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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