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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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l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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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식

요즘 나는 옛날에 써 놨던 일기장이나 원고 뭉치를 뒤적이는 버릇이 생겼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시간을 집에만 있게 되면서 찾아낸 소일거리다. 대부분 다 쓰레기에 지나지 않지만 며칠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원고 뭉치 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글을 하나 찾아냈다.
지금부터 12~13년 전, 집사람의 환갑잔치 때 초대한 손님들에게 낭독한 '초대의 변'의 일부다.
많이 쑥스럽지만, 그땐 나름대로 마음을 다하여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여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인용한다.
<- - - -발원지가 다른 샘물이 이 골짝 저 골짝 감돌아 흘러 내려오면서- - - - - 우리 부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각각 흘러 내려오다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 하나의 물줄기(가정)를 이루었습니다.- - ->
<- - - -나는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성공해 보겠다고 밤을 낮같이 낮을 밤같이 일하면서 더 큰 희망을 품고 용기를 북돋우며 함께 일을 했습니다.>
<- - - -특히 아이들을 착하고 아름답게 키워준 공로는 그 무슨 말로도 덮을 수 없을 것입니다.>
<- - - -나이를 먹는 것이 뭐 대단한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살아온 여정이 주름으로 훈장처럼 이마에 걸리면 가끔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게도 됩니다.>
* * *
집사람이 저녁이 되면서부터 뭔가에 쫓기는듯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왜 그러시우? 뭔가 불안해 보이네- - - -'
'- - - - -'
아무 대답이 없다. 텔레비전 앞에 멍청히 앉아 있다가 침실로 들어가 버린다.
나는 그 전과 조금 다른 분위기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방에까지 따라가서 재차 물었다.
'아니, 그냥 좀 불안해서 - - - -'
'뭐가?'
'내일 아침에 눈 수술 하러 가야 하는 날이잖우.'
그제야 나는 아차 싶었다.
약 한 달 전에 집사람은 백내장 수술 계획을 잡아 놓고 있었다. 그때는 한 달 뒤면 시간도 넉넉하고 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그날이 내일로 다가온 것이다.
'난 또 - - - - 걱정하지 마, 나하고 같이 가면 되잖아.'
다음 날 아침 이른 새벽에 나는 집사람을 병원에 내려 주고 수술이 끝난 다음에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하고는 자리를 떴다. (눈 수술 한 다음에는 반드시 보호자가 데리러 와야 한다.)
한 시간쯤 있다가 연락이 와서 병원으로 갔다.
집사람이 저쪽 복도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내 쪽으로 오고 있다.
한쪽 눈을 붕대로 가리고 플라스틱 커버를 한 위에 반창고 두 줄을 대각선으로 고정 시켰다.
한 시간 전에는 멀쩡하던 사람이 완전한 환자의 모습으로 변신한 채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저 사람이 진짜 '눈 수술'을 했구나.
아무리 백내장 수술이 간단한 수술이라고는 해도 이제부터 며칠 동안은 '환자'로구나 하니 순간적으로 복잡한 마음이 스쳐 갔다.
<- - - - -집사람은 그런 어려운 과정 중에서도 저 하나만을 믿고 따르며 견뎌 왔습니다. 그렇게 휩쓸려 가다가 보니까 올해 집사람이 환갑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백내장 수술이었기 망정이지 만일 다른 질병이었다면 어떻게 할 뻔했나. 곧이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 - - -나는 몸도 약한 집사람이 힘겨운 일을 하면서 소화도 못 시키고 때로는 토하기도 하면서 한 방향으로 동행해 준 것을 더없이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집에 와서도 약간 흔들렸던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집사람의 눈 수술이 내 탓인 것 같았다.
점심때가 됐다. 집사람이 한쪽 눈만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점심상을 차리기 위해서다.
나는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서 점심은 나가서 먹자고 했다.
<- - - -그동안 어려운 나날을 동행해 준 집사람에게 한마디 따뜻한 위로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상태에서 일은 안 해도 되지만 밥상 차리는 일에서는 아직도 해방되지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부엌에 들어가 요리 연습을 시작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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