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Artist Society for peace and missionary through music
- .
- Dec 10, 2020
- 3 min read
김은경 음악컬럼

독일에서 연주자 마스터 과정이 끝나갈 무렵, 나는 슬슬 한국 귀국을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Jascha Heifetz의 수제자인 Erick Friedman 교수에게 masterclass를 하러 Amsterdam International Music Festival을 갔다. 근데 이것이 나의 운명이었는지, Friedman 교수는 아파서 못 오고 SMU 에서 Eduard Schmieder 교수가 대리로 가르치고, Schmieder 의 초청으로 나는 댈러스에 첫 미국행의 길을 갔다. 그리고 1998년 처음 와 본 댈러스, 미국 땅, 나는 공항에서 SMU 로 가는 길을 보고 넓고 넓은 고속 도로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얼마 전 동독, 바이마르 땅에서, 2차 대전 전에 지은 기숙사에 살던 내게는 엄청난 문화와 경제적 차이를 첫눈에 느꼈다. 모든 생활비는 비싸게 느껴졌고, 다행히 학비 기숙사비는 장학금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미국 도착하자마자 생활비를 해결해야 했던 나는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했고, 다행히 음악 활동으로 충분히 생활비를 해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음악에 파묻혀 살던 생활은 끝이 나고, 나는 생존이라는 것을 이 미국 땅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일에서 윤이상을 본 이후로 음악으로 언젠가는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명성이 있고 좋은 음악가들은 이 땅에도 많았고, 음악으로 좋은 직업을 같은 일은 현실적으로 경쟁도 심하고 이 미국 땅에 사는 이들은 경제적으로도 꽤 부를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일이 끝나면, 계속해서 음악으로 이런저런 기회가 생기다 보니, 댈러스를 떠나 North Carolina로 가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가르치던 제자가 Graham 재단에 의료 이사장의 입양한 아들이었다. 남한과 북한을 자주 방문하시는 Zawadi 부모님과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를 다니시며 재난 지역을 돕는 Zawadi 가족을 보며 나도 음악으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야겠다고 또 한 번 영감을 받았다. 이렇게 미국 사람도 북한을 왔다 갔다 하는데, 같은 민족끼리는 자유롭게 방문을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다시 한번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유럽에 있을 때 “Peace One Day” 재단에 대해서 얘기를 들었는데, 이곳에 있을 때 나는 좀 더 이 재단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9/21 Peace One Day 철학이 바로 우리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작은 운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난 옛날 친구와 인연이 되어 보스턴으로 연주를 하러 갔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친구의 후배들과 함께 식사하다가, 음악 활동으로 평화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나의 의견을 시작하다가, 관심이 있는 소수의 후배와 함께 2008년에, 첫 프로젝트를 폴란드로 가서 음악회 장소가 없고 음악이 무엇인지 배울 기회가 없던 사람들을 위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대중적인 멜로디로 새롭게 편성한 곡을 오케스트라 반주로 녹음을 하였다. 그리고 무거운 피아노를 들고 다닐 수가 없으니, 이 MR 반주를 가지고 보육원, 교회, 충주의 꽃동네(장애인 보호 기관), 명동 성당, 호텔, 국회 등등 기회가 닿는 대로 음악인을 섭외하며 활동을 했다. 우리는 Global Artist Society 라는 음악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는 작은 모임을 시작했고, 좋은 추억과 많은 역경을 겪으면서 나는 8년간 2016년까지 해마다 Peace One Day 날 빠지지 않고 행사를 했고, 여러 도시에서 도움이 필요한 기관에 기부하는 기부 음악회나 이벤트를 조그맣게 하기도 했고 큰 행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북한 망명자들을 돕는 Link Korea를 초대하여 강연도 해 보았다. 그리고 이 강연에서 많은 외국인도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았다. 작게는 몇백 달러, 많게는 몇만 불 까지 기부를 하기도 하며, 나는 한국인은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외국인 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세상일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 법. 이런 작은 일을 하는 데도 경제 문제를 깨끗하고 솔직하게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역경을 겪고 나니 좀 더 현실을 알게 되었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하자면 초심을 잊어버리지 않는 동료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최근에는 잠시 활동을 멈추고 있다. 이 GAS가 나의 일이라면 아마도 기회가 또 올 것이고, 아니면 8년의 활동이 과거로 지나가겠지. 혹시 뜻이 있는 음악인이나 모든 분야 분들이 있으시다면, 또 새로운 인연이 생길 수도. (unkyoung_kim@yahoo.com)
コメン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