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블루’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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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g 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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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숙의 일상

2019년, 한국의 한 유기견 입양 봉사단체를 통해 강아지를 입양했었다. 임신해서, 이사 가서, 강아지가 너무 짖어서, 저지레가 심어서 등등의 말 같지 않은 이유로 길거리에 유기견이 넘치는데 수용할 장소는 적어서 많은 개가 안락사 당한다는 얘기를 듣고 내린 결정이었다.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강아지, 미국까지 데려와서 또 유기될까 봐 봉사단체에서는 서면 인터뷰, 직접 인터뷰 등을 통해 견주의 자질을 확인했다. 그런 관문을 거쳐 공항에서 강아지를 처음 안았을 때의 감격이란.
나는 엄청 뿌듯했었다. 내가 좋은 일을 했구나. 한 생명을 살렸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너를 구한 줄 알았더니 네가 나를 구했구나’로. 이 세상에 강아지처럼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또 있을까. ‘블루’라 이름 지은 이 강아지는 지난 2년 동안 그 누구에게서도 받을 수 없는 사랑을 내게 듬뿍 주었다. 가면 갈수록 블루가 없는 이 세상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랬는데 그 블루가,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 제일 잘한 일 다섯 가지 중 '블루 입양'을 하나로 꼽을 만큼 사랑했던 우리 블루가 죽었다.
지난 토요일, 일 년에 한번 실시하는 '커뮤니티 그라지 세일'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캠핑, 스키, 골프, 롤러스케이트 등 온갖 종류의 취미가 많았던 남편이 나이가 들면서는 그런 스포츠를 즐기는데 한계를 느꼈는지 그 장비들을 없애겠다고 하여 그라지 세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 남편은 자고 있었고 나 혼자서 물건들을 꺼내놓으려 현관문을 열어놓았다. 현관문을 열어놓던 그 순간을 내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블루가 열린 문을 통해 앞길로 뛰어나가다가 때맞춰 지나가는 차에 치인 것이다. 제한속도보다 빠르게 지나가던 차에. 바로 내 눈 앞에서. 단 1, 2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차에 부딪히고 튕겨 나가 쓰러진 블루를 미친 듯이 쫓아나가 안아 올렸으나 블루는 이미 축 쳐져 있었다. 나는 이미 알았다. 블루가 잘못되었다는 걸. 블루를 안고 이 세상 사람이 낼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그때까지 자고 있던 남편에게 울부짖었다. 블루가, 블루가, 블루가 차에 치였다고! 잠결에 제대로 된 상황판단을 못 한 남편은 후다닥 일어나더니 팬티 바람으로 현관 밖으로 뛰어나갔다. 블루가 길에 쓰러져있는 걸로 생각한 거다.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뼈 한 자락 다친 데 없이 블루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나보다도 남편이 더 블루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아픔과 슬픔이 더욱 컸다. 그는 지난달 은퇴 기념으로 10만 불에 가까운 트럭을 샀었다. 자기 ‘평생의 드림카’라고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그가 말했다. 이 트럭을 포기해서 블루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키를 내던지겠다고. 나 역시 그렇다. 블루가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모두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뜨거운 불구덩이에 블루를 던져넣고 싶지 않아서, 무엇보다 블루를 두고두고 옆에 있게 하고 싶어서 우리는 뒤뜰에 매장하기로 했다. 정부에서 허락하는 깊이 대로(남편이 줄자로 재어가면서) 깊게 깊게 구덩이를 팠다. 100도가 넘는 오후, 둘이서 눈물과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다 판 구덩이에 그때까지 잠자듯 상자 안에 누워있는 불루를 넣었다. '굳바이 블루'라고 작별 인사한 후 남편이 흙을 덮으며 통곡을 했다. 늘 냉철하고 침착하고 감정의 흔들림이 없던 남편, 결혼생활 20여 년 만에 그렇게 심하게 우는 것은 처음 보았다.
블루가 묻힌 자리 위에 꽃나무를 심었다. 이름도 모른다. 언제 개화하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크게 자라는지도 모른다. 블루가 더 이상 냄새나기 전에 얼른 땅속으로 안식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마음에 급하게 골라온 것이라. 홈디포에 있는 것 중 가장 이쁜 꽃이 피어있는 것을 골라온 것이라. 남편이 물을 주면서 말했다. 이제 블루가 꽃으로 만발해서 우리에게 늘 인사를 할 거라고.
남편이 말했다. 현관문 열어놓은 게 실수였다고 자책하지 말라고. 왜 블루를 일찍 데려갔냐고 신을 원망하지 말라고. 세상에 둘도 없는 귀염둥이가 2년이나 우리 곁에 머물렀던 걸 감사하라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블루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블루가 없는 데도 해가 뜨고 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뿐. 매일매일 우는데도 눈물이 그치지 않고 계속 난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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