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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목이 스러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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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 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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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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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기할배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인사회의 거목이 스러졌구나,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H씨로부터 전화가 와서 박할배의 장례식이 언제냐고 묻는다. 조금 전에 연락을 받아서 나도 아직은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고 했더니 일정이 정해지면 자기한테 꼭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사람들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절대 안 가고 싶지만 박만기할배 장례식에는 참석하고 싶다면서.

H씨, 무인도에서 사는 사람이다. 이 동네에서만 40년을 넘게 살았지만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왕래하는 사람도 없고. 그동안은 직장을 다니는 게 유일한 외출이었는데 그마저도 2년전, 재택근무를 함에 한 달 내내가야 사람 얼굴 한 번 보는 일 없이 혼자. 그나마 유일하게 소통하는 사람이 나. 박할배 별세소식도 내가 문자로 보냈다. 그렇게 고립되다시피 사는 사람이 박할배 장례식에는 참석을 하겠다니 놀랄 수밖에. H씨가 말했다. 박할배 부부한테 보은해야 할 일이 있다고. 몇 년전, 박할배 부부가 운영하는 정비소로 차를 고치러 갔었는데 부인이 돈이 든 봉투를 주더란다. 남편이 쓰러졌다는 소식들었다면서 힘 내라는 말과 함께. H씨가 말했다.

“모르는 체하고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이었는데 그렇게 챙겨 주는 마음이 얼마나 고마와야지.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울컥해지네…”

내게도 박만기할배 부부와 연관된 고마운 기억이 있다. 20여년 도 훨씬 전, 중앙일보에서 일하며 나 혼자 살 때. 책을 출판하고 생긴 큰 돈으로 당시 내 형편에 맞지 않는 차를 샀다. 어느 비 오는 겨울밤, 신나게 새차를 몰고 취재를 다녀오다가 물구덩이 빠져버렸다. 모터가 나가버려 차를 토잉해야했는데 사방을 휘둘러봐도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데가 없는 것이다. 항상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박만기할배 부부밖에. 다음날 그 부부의 도움으로 차를 토잉시키고 후속조치를 할 수 있었다.

출고한 지 보름도 되지 않는 차가 그 모양이 돼 버렸으니 내가 얼마나 기가 막혔겠나. 넋을 놓고 그 부부 정비소 한 켠에 마련된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부인이 뜨거운 우동 한 그릇을 시켜다 주었다. 뜨거운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면서. 우동을 먹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부인이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살다보면 이보다 더한 일도 겪게 되는데 너무 처져 있지 말아요. 힘내요...

결혼을 하고 내 형편이 좀 펴졌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고가의 화장품세트를 박할배 부인에게 선물한 일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였지만 그렇게라도 내 마음속에 늘 고마움으로 남아 있는 그 부부의 친절에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왜 내가 뜬금없이 그 화장품세트를 선물했는지 모를 것이다.

물론 그녀는 대가를 바라고 그런 선행을 베푼 것은 아니었을 거다. 나에게도, H씨에게도. 그러나 가슴에 양심 있는 사람은 그 따뜻한 손길을 기억한다. 형편이 되지 않아 고마움을 되갚지는 못하더라도 늘 기억은 하고 있다. N씨 역시 박만기할배 부부와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50년이 가까와오는 지금까지도. 70년대, 부모를 비롯해 온 가족이 이 동네로 이민왔을 때. 미국물정도 모르고 실정도 모르고 어떻게 먹고살까 걱정투성이, 어리버리하던 때. 박할배 부부가 자기집에 온가족을 초대해 성찬을 대접해 주더라고 했다. 열심히만 살면 미국은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고 등을 두드리면서. 그게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는 N씨. 또한 박할배 부부의 건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J 씨는 지난 30년 동안 렌트비를 단 한번도 인상하지 않았다고 고마워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형편이 좋으니까 그런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거라고. 아니다. 그 말은 옳지 않다. 지금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본 결과, 형편이 좋아서 남에게 후한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오히려 형편 좋아서 자기 자신에게는 몇 천불을 우습게 쓰면서 남에게는 커피 한 잔을 안 살 정도로 야박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박할배 부부는 자기 자신들에게는 인색하면서 남에게는 후한 사람들이었다. 둘이 서면 꽉 찰 정도로 좁은 정비소 사무실에서 식사를 해결해가며 저녁 늦게까지 고되게 일하면서도 한인 커뮤니티에는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위에 예를 든 것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한인들에게는 늘 도움의 손길을 주던 한인사회의 거목같은 존재. 그 거목이 세상을 떠났다. 이 메마르고 황량한 이민사회에 늘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던 박할배. 노인은 많아도 어른은 없다는 이 한인사회의 참된 어른이던 박할배. 이제 누가 박할배 떠난 자리를 대신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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