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한성백 권사님의 삶을 뒤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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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b 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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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현진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탄생과 성장, 죽음이라는 과정을 반복하며 생존한다. 자연법칙에 따라 생존하는 생명체 중에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우리 주변 많은 사람은 생활 속에서 자기를 성찰하고 사람의 도리를 헤아리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오늘 이야기의 주체인 고(故) 한성백 권사님은 그 누구보다 자신을 알고 이웃과 사회, 가정을 위하여 헌신하신 분이다. 오늘 고인의 영결식을 마치고 돌아와 고인의 삶을 뒤돌아보며 그 뜻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이 글을 쓴다. 고(故) 한성백 권사님은 우리나라가 가장 혼란했던 일제 강점기에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당시 조선 말기사회에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으나 고인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 한의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의료활동을 했었다. 1946년 월남하여 서울에서 사회 활동을 하다 1950년 6·25동란으로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하고 세 자녀 1남 2녀를 훌륭하게 교육시켜 명문대학을 마치고 1972년 미국 유학까지 보낼 정도로 교육열이 대단한 분이었다. 고인은 1978년 도미하여 딸 한지선, 사위 정몽환 씨와 함께 거주하며 손자 손녀들을 돌보며 사시다가 2022년 1월 8일 향년 103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위의 탄생과 삶을 보면 어느 누구나 겪어온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가 권사님의 삶에 대하여 뒤돌아보며 그 뜻을 알리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 구한말 암흑기에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신교육을 받고 전문직으로 활동하며 살았다는 것, 두 번째는 혼자의 몸으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세 자녀를 훌륭하게 성장시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는 것, 세 번째로는 모든 언행과 생활 자세를 엄숙, 고결하게 평생을 사시면서 모든 이들에게 모범을 보였다는 것이다. 누구도 감히 쉽게 할 수 없는 생활을 한 여사님을 천수를 누릴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고(故) 한 여사님은 가족 모두에게 성실하고 따듯하게 이웃을 대하고 사회에 봉사하라는 가르침을 주었으며 이에 따라 모든 자녀는 사회에 봉사했으며 특히 사위 정몽환 씨는 이 지역 사회를 위하여 한국학교 이사장과 한인회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봉사를 했다. 정 씨는 지역 사회에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하게 된 데에는 고인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늘 말해왔었다.
비록 고인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 훌륭한 정신, 자신과 가정, 이웃에게 따듯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 마음은 살아있는 우리에게 커다란 귀감이 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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