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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목욕탕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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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eb 16, 2022
  • 2 min read

글: 이계숙


봄이 저만치 왔다고는 하나 아침 저녁의 기온이 꽤 낮고 을씨년스럽다. 낮에는 햇볕이 따뜻하다가도 해만 지고나면 찬기운이 물려오는 것이 겨울이 아직도 우리곁에 머물러 있는 것같다. 이런 날씨에는 한국의 공중목욕탕 생각이 저절로 난다. 미국 온 지 30년째이지만 매일 김치와 밥을 먹어야 하고 한국사람들과 어울리고 블랙보다는 믹스커피를 마셔야만 되는 토종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나. 음식, 문화, 사람 등 웬만한 건 다 충족이 되기에 한국에 대한 아쉬움없이 만족하고 살고 있지만 딱 한가지, 한국의 공중목욕탕만은 아직도 그립다. 특히 겨울에는 더운 물이 철철 흘러 넘치는 공중목욕탕 생각이 더욱 절실하다. 걸치고 있는 옷을 다 벗어버리고 탕 속에 몸을 담궈 딱 삼십분만 유유자적하고 싶은 생각이. 그러고나면 몸의 피로, 머리속의 혼돈, 마음속의 찌꺼기까지 뜨거운 물 속에서 싸악 녹을 것만 같다. 사실 예전에 여기 한국인이 운영하는 공중목욕탕이 한 곳 있었다. 운영이 제대로 안 되어서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듣기로는 시설이나 규모가 제법 괜찮았단다. 으슬으슬 춥고 감기 기운이 있을 때는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아는 얼굴들을 만날까 봐 두려워서였다. 다른 지역의 한인들이 대거 영입돼 왔다지만 워낙 작은 도시라서 그런지 이웃사촌이란 말을 실감할 정도로 웬만한 한인들의 얼굴들은 거의 다 익히고 지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잘 알고 지내는 만큼 소문도 빠르다. 한인과 관계된 사건, 사고가 났다하면 그 다음날로 온한인사회에 소문이 퍼지는 곳이다. 특히 나는 10여년 동안 신문일을 했기 때문에 더욱 아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괜히 어줍잖게 목욕탕 한번 갔다가 그동안 옷으로 잘 가려온 형편없는 내 몸매에 대한 소문이 퍼질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베이지역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한 여성은 그 지역에 시설좋은 사우나가 있어도 나처럼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안(못)가는 이유는 나랑 비슷하다. 자신의 고객과 적나라하게 벗은 몸으로 마주치지 않고 싶기 때문이란다. 손님의 90퍼센트가 한인인데 거기 갔다가는 손님을 만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벌거벗은채로 마주친 손님과 인사를 하기도 안 하기도 곤란하니까 아예 그런 상황을 안 만드는 게 낫다는 것이다. 대신 그녀는 공중 목욕탕의 뜨거운 물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집에서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한다고 한다.

나도 몸 컨디션이 좀 안 좋다 싶으면 집 욕조에 물을 받는다. 다행히 우리집에는 둘이 들어앉아도 남을 만큼 널찍한 욕조가 있다. 그렇지만 집에서 하는 목욕은 아쉬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몸을 푹 담그는 것 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한국처럼 바닥에 물을 쫙쫙 끼얹을 수가 없어 불편하고 목욕을 끝내고 나면 욕조를 닦아야 하는데 이 일 또한 성가시다. 그중에서 제일 아쉬운 일을 꼽으라면 집에서 하는 목욕은 혼자이기 때문에 심심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공중목욕탕에서는 다른 이의 몸매를 옆눈으로 힐끔힐끔 감상할 수 있고 엄마를 따라온 아기의 오동통한 볼을 만져볼 수도 있었으며 탕안을 마음대로 활개치며 다니다가 내 또래의 여자에게 말을 걸어 등의 때를 서로 밀어주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패거리로 몰려온 아줌마들의 수다를 엿듣는 재미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었다. 목욕탕에 오는 아줌마들은 대개 스스럼없이 자신들의 가정사를 풀어놓곤 했는데 남의 일에 관심많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나는 딴청을 피우는 척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곤 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큰 멍에를 진 채 살아가야 했던 한국의 주부들은 한번 목욕탕에 갔다하면 보통 서너시간을 소일했는데 지금처럼 딱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데가 없는 그 시절엔 목욕탕만이 큰 위안처였던 것 같다. 지금은 한국도 변해 예전처럼 커다란 탕하나만 달랑 있는 목욕탕은 찾아보기 어렵고 몸에 좋다는 온갖 최신식 설비를 갖춘 목욕탕(사우나)가 성업중이라고 한다. 그런 최신식 설비를 안 갖추어도 좋으니 오다가다 쉽게 들릴수 있는 공중 목욕탕 하나만 가까히 있었으면 좋겠다. 늙어서 할매가 된 지금은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마음놓고 목욕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물질의 풍요와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미국에 살면서도 나는 80년대의 후진 공중목욕탕이 너무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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