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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를 지나치지 못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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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g 18, 2021
  • 2 min read

이계숙의 일상

이 글을 써놓은 얼마 후, 블루가 저세상으로 떠났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인생사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휴일 늦은 오후에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페달을 돌리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누런 털을 가진 중간 사이즈의 개 한 마리가 절뚝거리면서, 숨을 헐떡이면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어디서부터 걸어 온 것일까. 주변 10마일 내에 인가라고는 없다. 넓은 들판과 농수로가 흐르는 캐널과 끝없이 길게 뻗어 있는 자전거길 뿐.

개가 나를 피하지 않고 이쪽으로 향해 걸어오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손을 내밀었다. 얼른 물을 좀 주려고.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개는 나를 못 본 척하고 지나쳐 계속 걸음을 옮긴다.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겁을 먹은 것 같다. 뒤에서 개를 소리쳐 부르다가 자전거와 함께 개를 따라갔다. 내 머리에는 개가 탈진하기 전에 얼른 물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의 간절한 바람을 무시하고 앞으로 앞으로만 걸어가는 개.

나는 자전거를 내버려 두고 소리 안 나게 개를 쫓아가서 서너 걸음 앞서 걷다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몸을 낮추면 겁을 덜 먹을까 봐. 내 생각이 옳았다. 개가 비척거리며 내게 오더니 쓰러지듯 안긴다. 개를 안아 올렸더니 며칠을 굶었는지 뱃가죽이 등에 붙어있다. 보기엔 제법 큰 개였는데 검불처럼 가볍다. 손바닥에 물을 부어 입에 갖다 댔더니 허겁지겁 미친 듯이 핥아댄다.

물을 다 먹이고 개를 안고 앉았는데 참 난감했다. 집 잃은 개가 분명한데 휴일이라 관계기관은 문을 닫았고 일단 집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개가 잘 걷지를 못한다. 발바닥이 다 까져서 빨간 살이 보이는 것이다. 둘러매야 할 것 같은데 내겐 자전거가 있다. 둘을 동시에 옮길 수는 없는 노릇.

남편한테 도움 요청 전화를 하니 벼룩 옮으면 어쩔 거냐면서 얼른 개로부터 떨어지란다. 근처 숲에 텐트 치고 상주하는 홈리스 개일지도 모르니 그냥 두고 자리를 뜨란다. 절대 집으로 데려오지 말란다. 남편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늘 한 점, 물 한줄기가 없는 들판에 그냥 두고 갔다가 기진맥진해 죽기라도 하면 어쩌나. 곧 날도 어두워질 텐데. 지나가는 바이커라도 있으면 도움을 청해보겠지만 그날따라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 남편이 뭐라 하든 간에 일단 집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았다.

땡볕이 내리쬐는 들판에서 개를 안고 잠시 궁리하다가 자전거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자전거보다는 생명이 우선이니까. 나는 개를 안고 집을 향해 걸었다. 10분도 안 돼 얼굴과 몸은 땀투성이가 되었다. 해는 마지막 열기를 내뿜고 지겠다는 듯이 지글지글 작열하고 가벼운 줄 알았던 개의 무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내 팔을 아프게 했다. 녀석은 이제 안심했다는 듯이 나한테 맘 놓고 안겨있어 몸이 처지니까 더 무거운 거다.

팔이 아프면 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안고 걷기를 삼십 분쯤 했을까. 세상에, 저 앞에서 한 남자 바이커가 오는 게 보였다. 그가 그냥 지나칠까 봐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이 개가 주인을 잃은 것 같은데 유기견센터는 문을 닫은 것 같고 어찌하면 좋을까?"

바이커가 자전거를 멈추더니 말했다.

"오, 시바네! 이거 굉장히 비싼 개인데!"

털이 누레서 잡종인 줄 알았더니 시바라니. 바이커가 헬멧을 벗고는 전화기로 한참 뭘 보더니 소리쳤다. 찾았다, 개 주인!

남자가 확인해 본 곳은 '페이스북'. 애타게 찾고 있다는 공지와 함께 개 사진이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개였다. 7월 4일 밤, 폭죽 소리에 놀란 개가 집을 뛰쳐나가더니 안 돌아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때가 7월 7일, 사흘 동안이나 개는 집을 잃고 벌판을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 한 채. 연락을 받은 주인이 한달음에 쫓아왔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내가 그 더위를 무릅쓰고 개를 구조한 것은 행여나 개가 탈진해 죽을까 봐 염려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혹시라도 우리 강아지 중 하나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누군가가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악한 끝은 악하게, 선한 끝은 선하게 돌아온다는 말을 나는 믿으니까. 오늘 내가 베푼 선행이 내일 큰 복으로 돌아온다는 걸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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