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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그대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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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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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숙의 일상

주위에 사랑에 빠진 남녀가 있다. 둘 다 이혼으로 싱글이었고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이긴 했지만, 서로를 전혀 의식 안 했었다고 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어찌어찌하다 ‘눈이 맞았다’는 두 사람. 길고 멀고 험준하게 높은 길을 돌고 돌아서 만난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옆에서 보기에 샘이 날 정도로 둘은 뜨겁게 사랑한다. 둘 다 나이는 꽤 되었지만, 사랑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아니, 나이가 많기에, 그래서 사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어쩌면 생애 마지막 사랑이 될지도 모르기에 더욱 애틋하고 소중한지도 모른다.


코로나 때문에 작년 봄부터 재택근무를 하지만 사무실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신입사원들이 대거 입사했는데 내 옆으로 이십 대의 여자가 왔다. 같은 또래의 남자가 그 여자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렀다. 나는 처음엔 친오빠인 줄 알았다. 먹을 것 갖다주고 뜨거운 물도 갖다주면서 연신 극진하게 챙겨주길래. 알고 보니 애인 사이였다. 재미있는 게 여자는 날씬한 몸매와 인형 같은 얼굴로 어딜 갖다놔도 빠지지 않을 외모인데 남자는 키도 작고 몸도 땅 달하고 얼굴에 여드름까지 숭숭 나 있었다. 어딜 봐도 잘생긴 데라고는 없다. 그런데도 둘은 죽고 못 살았다. 어쩌다 고개를 빼고 보면 둘이 껴안고 만지고 쓰다듬느라 정신없다. 어린 나이들이라 자기들이 지금 있는 장소가 일터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야, 대강들 좀 해라. 사무실에서 무슨 짓들이냐, 하고 어느 날 내가 짓궂게 소리 질렀다. 움찔하는 둘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사실 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의 사랑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


아랫동네에 육십 대 초반의 싱글 남자가 있다. 사업체를 두 개나 갖고 있고 외모도 괜찮고 성격도 좋고 뭐 조건이 그만하면 좋은 것 같다. 중매 잘하면 옷이 한 벌이라는데, 옷 한 벌 얻어 입을 욕심에 내가 나섰다. 이 동네 여자들 몇 명을 찍어다 부쳤다. 그런데 뭐가 제대로 안 된다. 만나보기도 전에 사진만 보고도 싫단다. 나이가 안 맞고 외모가 자기 스타일이 아니고 직업이 마음에 안 들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데 없으니 일단은 한번 만나나 보라고 권유해도 싫단다. 확실하지 않으면 시간 낭비, 감정 낭비란다. 신중해지고 싶단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서 사람 사는 이치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정말로 신비롭고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 남녀가 서로 좋아한다는 거다.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 중 서로에게 ‘필이 꽂힌다’는 일이, 서로를 맘에 들어 한다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쪽에서 좋아하면 저쪽이 싫어하고 저쪽은 날 좋아하는데 또 이쪽이 싫으니까.


내 싱글 시절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내가 원하는 남자는 아주 단순했다. 유식하고(내가 무식하니), 옷 잘 입고(옷에 센스가 있는 남자가 모든 면에서 센스가 있을 거로 생각해서),이지적(理智的)이고 샤프한(내가 촌스럽게 생겼으니)외모를 갖춘 남자라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일까, 기특하게도 직업이나 재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가난하면 같이 벌면 되니까. 지금 생각해도 별로 까다로운 조건이 아니다. 그런데도 눈에 불을 켜고 살펴봤지만 그런 남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 운 좋게 그 비스무리한 남자를 만난다 해도 그쪽에서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했다.


가수 이선희가 부른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란 노래가사에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하는 대목이 있다. 그 대목을 읊조릴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그렇다. 75억 인구 중 서로를 알아보고 좋아하고 사랑에 빠진다는 일은 기적중의 기적 같은 일이다.


수세미 같은 몰골로 퍼질러 앉아 양푼에 밥 비벼 먹고 있는 뚱뚱한 아내, 올챙이 같은 배를 내밀고 코 후비면서 소파에 늘어져 있는 남편, 정말로 고개를 돌리고 싶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짜증이 저절로 솟구친다. 제발 좀 저 꼬락서니 안 봤으면 살 것 같다. 그렇지만 잊지 말자. 우리는 한때 불같은 사랑에 빠졌던 사람들이었음을. 그중에 그대를 만나 결혼한 사람들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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