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와 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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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c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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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 트>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덤퍼(Thumper)를 만난다.
방 문을 열면 앞에서 잠자던 덤퍼가 다가온다.
없는 꼬리를 흔들면서 오는 폼이 잘 주무셨느냐고 묻는 것 같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서로 눈인사를 한다.
여왕의 개

덤퍼를 쉽게 소개하면 여왕의 개(Queen's Dog)로 불린다.
'Queen'이라는 영화에서 여왕이 안고 있던 개로 영국 웨일스 지방에서 양모리 개 종류의 하나다.
다리는 짧고 배는 길어서 걷는데 좀 요란하다.
다른 개들처럼 뒷모습이 매끄럽지 못하고 엉덩이를 요란하게 흔든다.
개가 처음 와서 조금 자란 뒤 아들이 개를 보고 붙인 이름이다.
이름대로 해석하면 요란스럽게 흔든다는 뜻이 맞을 것 같다.
개가 생후 한 달 만에 우리 집에 와서 거의 15살이 가까이 살고 있다.
개를 데려온 아이들은 샌프란시스코로 이사가고 지금은 개를 포함해 세 식구가 살고 있다.그동안 텅 빈 집에 덤퍼는 사랑을 많이 받고 즐거움도 많이 선사하면서 잘 자랐다.
같이 공원에도 가고 걷기도 했다.
집에만 오래 있다 보니 사회성이 좀 떨어져서 개 목욕탕(Dog Bath)에 가면 다른 개들과 잘 적용을 못 해 상당히 사나웠다.
지금은 아주 익숙해져서 개 목욕탕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요즈음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자주 가기 힘들다.
4개 목욕탕 가운데 2개는 문을 닫아 겨우 2개만 오픈하니 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열심히 데리고 갔는데 이번 주부터 통금과 봉쇄령으로 영업을 하지 않아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계절적으로 겨울이 왔으니 뒷 마당에서 목욕을 시킬 수도 없어 진퇴양단이다.
코로나로 인해 개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아버지도 싫어 했던 지저귀
잘 자라던 개도 세월을 비껴가기는 힘든 것 같다.
그동안 개가 영리해서 자기 볼 일 잘 가렸는데 나이 탓인지 아주 근래 실수를 시작했다.
볼일을 볼 시간이면 뒷문 앞에서 표시는 했는데 이젠 잊어버리고 실수를 하는 것이다.
pet store에 가서 물어보니 나이로 봐서는 기저귀가 필요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 끝에 하나를 사가지고 왔다.
집에 와서 기자귀를 채워 주는데 상당한 몸싸움 끝에 겨우 성공했다.
처음에는 상당히 저항했는데 곧 잊어버린 듯 잘 돌아다녔다.
간혹 기저귀를 만져 보아도 축축한 것 같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
한참 후 밖에 나가려고 해서 데리고 나가 기저귀를 벗기니 오줌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개는 익숙하지 않은 기저귀를 차고 계속 참았던 것이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 그저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상당한 딜레마에 빠졌다.
기저귀를 채울 수도 안 채울 수도 없게 되었다.
20년 전 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실 때 가장 싫어했던 것 중 하나가 기저귀를 차는 것이었다.저를 보기만 하면 기저귀를 치워달라고 했지만 거기 요양원에서는 반드시 차야 라는 규정이 있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나중에 체념했지만, 그때 행복하지 못했던 얼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덤퍼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얼마나 기저귀가 싫었으면 오줌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겠나.
참느라고 얼마나 큰 고통을 느꼈겠나.
나의 실수를 자인했다. 개에게 몇차례 사과도 했다.
결국, 나는 그 후에 두 번 다시 개에게 기저귀를 채우지 않았다.
개가 실수해도 사랑의 마음으로 받아드릴 것이다.
기저귀 해프닝이 있은 다음부터 개가 슬슬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나로부터 어떤 공포감을 느낀 것이다.
다시 두 배 세배로 개에게 사랑을 베풀기 시작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개에게 하나의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이길 수 없는 세월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받거나 강압적으로 하면 정신적 나쁜 흔적이 남기게 된다.
앞으로 우리 개가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른다.
그래도 2년 3년은 더 살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기저귀를 다시 차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언제 그런 시간이 오더라도 최대한 늦게까지 기다릴 것이다.
개나 인간이나 세월을 이길 수 없으니 때가 오면 순응을 해야 하지 않겠나.
개도 나이를 먹으니 입맛도 짧아졌다.
자꾸 먹을 것을 밝히는데 자기 밥보다 간식을 좋아하고 인간의 밥을 더 좋아한다.
이제껏 개밥만을 준 것은 개의 건강을 위해서다.
우리 개가 15살까지 무탈하게 잘 자란 것도 인간의 먹이를 안 먹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 개중의 하나가 집에서 기르는 웨일스 콜키다.
미국에선 힐링 개로 특별히 노인들이 많이 기르고 있다.
집에서 TV를 보려고 바닥에 앉으면 어김없이 와서 무릎에 머리를 파묻고 자려고 한다.
귀를 만져도 좋아한다. 개도 인간처럼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개와의 사랑도 더 익어만 갈 것이다.
(김동열 기자 / hdnewsu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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