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합리적인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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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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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숙 일상

새벽에 남편이 응급실에 간 일이 있었다. ‘신장결석’ 때문이었다. 토요일 오후부터 살살 아프기 시작했는데 큰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왜냐면 자주 있는 일이었으니까. 맥주를 마시고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법석을 떨다가(그렇게 해서 돌이 저절로 빠져나가는 수도 있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3시, 남편이 일어나는 기척이 보이는 것 같더니 옷을 주섬주섬 줏어입었다. 응급실에 가야겠단다. 도저히 더 이상은 아픔을 참기 어려울 것 같단다. 그래서 내가 데리고 갔냐고. 아니. 남편이 직접 운전해 갔지. 나는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눈이 극도로 나빠서 모르는 밤길은 운전 못 하니까. 그리고 같이 가봤자 내가 도움 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추운 대기실에서 마냥 기다리는 일밖에는. 왜 둘씩이나 고생을 해. 남편을 보내고 잠이 안 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아는 이로부터 이메일이 날아왔다(간호사인 그녀는 밤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종종 이메일을 보낸다). 남편이 신장결석으로 혼자 응급실에 갔다 하니까 정말로 믿을 수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장결석이 얼마나 아픈 줄 알아요? 애 낳는 고통보다 더 심한 게 신장결석으로 인한 통증이에요. 그렇게 심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혼자 보낼 생각을 했어요? 혼자 운전해 가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맘 편하게 집에 있어요, 그래? 동네 걱정은 혼자 다 하는 성격이길래 푸근하고 따뜻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참 모질고 냉정한 사람이네요.”
주위 사람들한테 그리고, 한국의 친구한테 같은 이야기를 했더니 입을 모아 나를 비난했다. 운전은 안(못) 하더라도 같이 갔어야 했다고. 도움이 되든 안 되든 옆에 있어 주었어야 했다고. 그게 부부 아니냐고. 한 친구가 말했다. 네 남편 사람 참 좋네. 만약 내 마누라가 그랬다면 당장 이혼이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동생 가족이 놀러 왔었을 때도 나는 주위로부터 직싸게 욕을 먹었었다. 다니는 걸 싫어하는 나라서 주위 사람들한테 동생의 관광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누나 집이라고 찾아온 동생,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남을 시키느냐, 이거였다. 아무리 싫었어도 누나가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을 시켰어야 옳았다는 거다. 그리고 동생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 그냥 공항입구에 떨어트리고만 왔다고 했더니 또 난리가 났다. 어찌 그리 사람이 생각이 없냐고. 출국하는 것까지 보고 왔어야 했다고. 그게 아니라면 수속하는 데까지만이라도 같이 있어 주었어야 했다고. 아니, 걔네들이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저희들끼리 얼마든지 수속 밟고 비행기 탈 수 있다. 작별 인사는 집에서 떠나면서 미리 다 했다. 굳이 주차비 들여가며 공항 안까지 같이 우르르 몰려갈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정작 동생은 아무 소리 안 하는데 남들이 더 야단이었다. 자기들 같았으면 평생 누나를 다시 안 본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情)을 우선시한다. 정을 주고받으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민족이다. 나는 그 끈적끈적한 정이라는 게 참 싫다. 나는 정보다는 합리적(적어도 내 생각에는)이고 실용주의인 사람이다. 미국식이다. 미국에 오래 살아서가 아니라 예전부터 그랬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주위로부터 싸가지없다는 욕도 많이 들었는데 남들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내가 싫은 일, 귀찮은 일은 아예 처음부터 안 한다. 부탁한 상대방이 당혹해하거나 말거나 거절도 잘한다. 그 자리서 ‘싫습니다’ 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내 의사표시를 한다.
오래전, 어떤 이가 탐탁지 않은 부탁을 하길래 면전에다 싫습니다라고 거절한 일이 있었다. 가차 없는 내 대답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 대응을 못 하더니 다음날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부드럽고 좋게 거절하는 방법도 있고 나중에 거절하는 방법도 있건만 어떻게 여러 사람 있는 자리에서 차갑고 매몰차게 무안을 주냐고.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거절은 확실하게, 가능하면 빨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거절하나 지금 거절하나, 부드럽게 거절하나 확실하게 거절하나 어쨌든 거절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 좀 해보고요’ 나 ‘며칠 있다가 대답해 드릴게요’하는 말로 상대방에게 막연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하느니 아예 처음부터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알려줘서 다른 방법을 강구하게끔 하는 게 더 좋은 방법 아닌가.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되려면 정에 이끌리지 말고, 남의 눈 너무 의식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고 매몰차다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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