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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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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eb 11, 2021
  • 2 min read

좋은나무숲 엘리자벳 김

오징어젓, 멸치볶음, 무말랭이 무침 등, 가지고 간 반찬을 부엌 카운터에 놓고 뒤 돌아 나오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눈물이 뚝 떨어진다. 눈물을 보일까 얼른 선글라스를 끼고 손을 흔들었다.

“그만 들어가세요”. 차고 앞에서 손을 흔들어 주시고 계시는 오 박사님께 다시 오겠다며 부지런히 차에 시동을 걸었다. 녹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어버리신 송운 (松韻) 시조 시인님 댁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은 늘 이렇듯 가슴이 쏴 하고 아프다. 다행히도 65년째 동고동락을 같이 하여주시는 남편이신 오 박사님이 계셔 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몸의 기능이 마음을 못 쫓아 가 줄 때 나이가 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85세에 돌아가신 엄마는 10여 년을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 매일 출근을 하셨었다. 이른 아침에 카페 안의 유리창을 통해서 보면 전철역(Bart)에서 내려 걸어오는 70세 넘은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이 드셔도 멋쟁이 소리 들으셨던 엄마는 적당히 굽 있는 구두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또박또박 걸어오시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하루가 다르게 엄마의 어깨가 처지고 아주 천천히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며 아! 늙음이란 모든 것이 느려지는 것부터 시작하는가 보다 했다.

내가 현원영, 오장옥박사님 내외분을 만나서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거의 20년이 되어 간다. 소녀처럼 해맑은 그 분의 미소와 낭랑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는 거의 독보적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낭랑한 목소리로 “<3.4.3.4.3.4.3.4.3.5-7 4.3>하며 시조 쓰기를 열성을 다해서 모임에서 지도해 주시던 분이었다. 그러나 이 분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 목소리도 느려지고 또한 문밖 출입도 거의 힘든 채 녹내장의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엘리자벳 씨 눈이 안 보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나 대신이라도 시조 많이 쓰셔서 시조의 우수성을 알려주세요” 하며 만나기만 하면 여전히 시조 이야기로 시작해서 시조 이야기로 끝을 내신다. 송운 현원영 시조 시인님의 기대치에 못 미치기에 늘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나는 이분을 생각하면 언제나 존경심이 우러난다. 그것은 <자두 크리수나무트>의 사랑이란 시처럼 “그의 덕은 높고도 크나 겸손은 한없이 낮은” 분이기 때문이다. 이 분의 사유의 세계는 깊고 푸르다. 60여 년이 넘는 타국 생활 중에서 조국이 제2의 나라가 될 만도 하건만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향수는 아름다운 시조로 탄생되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더구나 74세에 시조를 접하고 이제 93세가 되신 이분의 무한한 시조사랑은 과히 국보급이라 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지금도 불편하신 몸에도 불구하고 자나 깨나 시조를 세계적으로 활성화 시키기만을 생각하시는 송운 시조시인님께 미약하나마 시(詩) 한 수 바치며 사랑을 드린다.

당신은 전쟁의 비극 속에

울부짖는 대지의 절규를 가슴에 담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달려

고단함을 반찬으로, 배고픔을 친구로 삼아

새로운 대지에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금문교 아래 피어 오르던 안개, 그 안개는 작은 개 여울 가에 흔들리던 갈대의 빛

타말파이스 산 봉오리에 떠 오르는 둥근 달은 밤나무 사이에 걸려있던 하얀 하현달

소살리토 바닷가의 불타는 저녁 노을은 장작불 태우며 가마 솥에 밥짓는 연기

깊은 기억 속의 흐르는 추억의 강은 당신을 성장시킨 창작의 강물

귀를 함초롬이 열고 낙랑의 소리를 담아내면

전설이 살아서 송어처럼 뛰어 오르고 소나무에 새움이 터서 솔향이 날렸습니다.

이제 당신은 고른 숨을 내쉬며 서성이던 레드우드 숲길을 지나

밤송이 툭툭 터져 알밤이 구르는 낙랑의 하늘을 그리며

솔향 찍어 붓 향 날리고 있습니다.

아! 당신은 역시 낙랑의 딸이었습니다. (낙랑의 딸, 시인 엘리자벳 김)

***현원영 시조 시인은 서울 대학교 사범대학 사학과를 졸업 후 1953년도에 도미한 후 결혼 후 워싱턴 대학에서 철학박사 취득 후 Marin, Ca 대학교수로 은퇴함. 74세에 시조 시인으로 등단

한국의 펜클럽에 송운 시조문학상 제정. 이 지역에 시조마당 창간 등 시조 보급을 위한 많은 일을 해 오고 있다. 시조집으로 <타는 노을 옆에서> <낙랑하늘 그리며> <길 없는 길에서> <소나무 생각> 등을 출간하였다. 현재 San Anselmo에서 의학 박사로 은퇴하신 부군이신 오장옥 박사님과 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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