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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연극/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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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r 7, 2021
  • 3 min read

최이안(MD) 컬럼

연극/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두 작품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삼십 년 전에 나온 미국 작가가 쓴 연극, 또 하나는 올해 나온 한국 영화입니다. Three Tall Women. 1990년, Edward Albee란 극작가가 쓴 연극입니다. 짧은 연극이니 2~3시간 안에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검색해 보니, 한국에서도 무대 위에 올려진 적이 있었답니다. Edward Albee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는 연극/영화로 널리 알려진 분인데, 연극으로 퓰리처상을 세 번이나 받은 분입니다. 이 연극 Three Tall Women도 1994년에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삶의 각기 다른 정점에 놓여있는 세 여인을 통해, 삶을 다른 시각으로 이해한다는 간단한 얘기이지만, 2막에 들어서는 그 반전이 천재적으로 드러나며, 또 주옥같이 아름다운 대사들을 군데군데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연극이 쓰인 1990년에 벌써, 20대의 여인, 50대의 여인, 또 80대의 여인, 이렇게 세분들이 벌써, 급히 변해가는 세상에 따라, 자신의 역할들도 급히 변해가며, 또 ‘이런 게 삶이구나’라는 이해 마저, 달라지는 것을 이 연극이 잘 표출했습니다. 물론, 30년이 지난 2021년에도 그 연극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정말, 세상은 빨리 변하고, 우리의 각자 역할도 또 삶에 대한 이해도 그만큼 빨리 변한다는 것이요. 등장 인물 중의 하나가 50대 여인입니다. 제가 이 연극을 처음 읽은 것이 20대 후반이었는데, 그 50대 여인이 읊는 대사가 제 마음에 깊이 남아서, 정말 나도 50대가 되면 저런 생각을 가질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도 50대 중반에 들어서니, 하나씩 둘씩 잔병을 겪긴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저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느낌입니다. 그 전성기라는 게 무슨 돈/지위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에 대한 ‘이해’의 전성기입니다. 깨닳음이라고 할까요? 이 연극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대사처럼, 50대는 삶의 꼭대기 올라가, 내가 지금까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볼 수도 있고, 또 앞으로 내가 내려가야 할 길도 볼 수 있는, 영어 표현으로 vintage point이기 때문입니다. 이 vintage point 위에 서서, 많은 삶의 이치들과 많은 이들을 저질렀던 일들을 이젠 이해하게 되고, 또 제일 중요한 것 또 제일 반가운 것은, 그렇게도 싫었던 저의 부족한 점들을 용서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이 정도면 됐어… 그동안 수고 많이 했어. ” 물론, 잔병들이 하나씩 둘씩 찾아옵니다. 하지만, 앞으로 15~20년간은, 통계적으로, 중병은 아니고 잔병들이니, 너무 심려하시지 마시고, 그 삶의 꼭대기에서 그 전망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진짜 중병들은 80대부터 걱정하셔야 하고, 소위 말하는 관절염들도, 통계적으로, 70대부터 갑자기 많아지고,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닌 한, 대부분은, 50~60대는 enthesopathy라는 tendon, bursa, ligament의 염증들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몸에 구조도 그렇게 되어있듯이, 정신의 구조도, 어떤 병 그 자체보다는 그 병에 대한 reaction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50대를 사시는 분들…. 삶의 꼭대기를 즐기세요. ‘아이.’ 2021년 2월에 개봉된 한국 영화입니다. 우선 disclosure: 영화 만든 사람들 제작권 가진 이들과 전 무관합니다. 감독을 만나 뵙고 저녁을 사드리고 싶기는 합니다. 이런 영화는 세계 어느 영화제에 출품해도 당당히 내보일 수 있는 수작입니다. 독립 영화라서 화려한 production은 전혀 아니고, 무슨 톱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도 아닙니다. 주인공으로 나온 여배우는 ‘신과 함께’라는 히트작에서 조연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낯이 익습니다. 무슨 절묘한 경국 지색의 얼굴/외모는 아니지만, 그 평범한 이웃 사는 학생같은 분위기와 점차 내보이는 카리즈마 쩔은 연기에 감탄을 계속 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주제가, 보육원에서 자란 고아들 또 룸 살롱에서 일하는 여자들 등등 사회에서 버림 받은 이들 중심으로 전개 되기 때문에, 축 쳐지는 느낌 받으실지도 모르지만, 스토리의 편집이 빠르고, 정확해서, 왜 지금 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으며, 또 마지막 절정 부분의 카메라 앵글과 조명은, 아무런 배경 음악 하나 없이도, 그 충격/감동을 깊고 넓게 가져 옵니다. 이 영화를 계속 보고 있자면, 만 20살이 안된 것 같은 주인공의 moral authority입니다. 저렇게 어린 사람 앞에서, 왜 다른 등장 인물들은, 나이는 훨씬 더 들었는데, 아뭇소리 못하고 수그러드나… 그게 영화니까 인위적으로 각본대로 따라 하기 때문이라는 느낌은 전혀 안들고, 지금 이 장면들이 내 눈 앞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강렬한 스토리입니다. 뜬금없는 얘기입니다만, 전 지난 몇년간 ‘지도자’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왔습니다. 지도자들을 지도자들 답게 만드는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미국도 ‘지도자’ 문제들이, 정치적 차원 뿐만 아니라, 개개인 직장에서도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바드 비즈니스 리뷰라는 잡지에서 이 주제를 다루었을 때, 결론은 moral authority였읍니다. 물론, 그 다음 질문은 그럼 그 moral authority란 것은 무엇인가? 이 ‘아이’라는 영화를 보시면 그 moral authority가 무엇인지 확실히 연출되어 있고, 또 왜 나이를 두배 세배 먹은 어른들이 이 젊은이 앞에서 고개 숙이며 그녀의 결정을 따르게 되는 지 보실 수 있읍니다. 그 질문,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루는 장면들이 영화 군데 군데 나옵니다. 영화와 연극을 사랑하는 이로서, 또 그 예술 작품들이 우리의 삶을 반영해 주면서, 동시에 역으로 우리 삶에 반영시켜주는 모습들을 음미하면서 그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살아갑니다. 교포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두 작품들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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