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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견과 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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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l 7, 2021
  • 3 min read

노견(老犬)과 폐선(廢船)


엘리자베스 김 | 좋은나무 숲

며칠 전 밤 1시경,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이 방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며 나를 깨웠다.

개가 없어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뒷마당에 나가는 문을 열어주었는데 들어오는 것을 못 본지 20분이 넘었다고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16년째 동고동락을 같이하는 애견이 없어졌다는 말에 어찌나 놀랬는지 자다 말고 뛰쳐나가 뒷마당과 집 앞까지 나가서 “모끼야” “모끼야” 부르며 소동을 벌였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실은 우리 애견은 벌써 볼일을 보고 일찌감치 양털로 만든 작은 Rug에 누워 자는 중이었다. 하얀 털을 가진 비숑 프리제 종류라 양털과 색상이 같아 구별을 못 한 남편의 실수였다. 또한 노견인 개 역시 귀가 이젠 잘 들리지 않아 그 소동 중에도 정신없이 잠만 자고 있었다. 자다 말고 생 쇼를 했지만 그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곧 다시 코까지 골면서 잠을 자는 개를 바라보며 우리 모끼는 무슨 꿈을 꿀까 생각을 했다. 종일 뛰고 장난치던 혈기 왕성하고 찬란했던 젊음을 그는 그리워하며 꿈꾸고 있을까?

젊음은 영원할 것 같지만 슬금슬금 몸의 기능을 망가뜨리며 야밤의 도둑처럼 조용히 온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나나 남편 그리고 개까지도 흠뻑 옷이 젖어가고 있다. 이렇듯 살아있는 생명체만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존재하는 것은 노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내가 자주 출사를 가는 Point Reyes 국립해안 공원 바닷가로 가다 보면 인버네스란 작은 동네가 있는데 꼭 들리게 된다. 이곳에는 이젠 완전히 허물어진 폐선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사실 6.7년 전만 해도 비록 사구에 얹혀 있는 폐선이라 할지라도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 작은 배 안에는 주방과 침대로 사용했을 듯한 낡은 시설도 있었고 어느 아름다운 여자의 초상화까지 그려져 있었던 나름대로 멋진 폐선이었다. 이 배에 흠뻑 빠진 나는 이 배의 사진을 적어도 수백 장은 찍었을 것이다. 한때는 바다를 누비며 제 몫을 다 하였을 아름다운 배가 이제는 늙고 추레해진 모습으로 사진작가로부터도 외면을 당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한 동안 내게도 찬란한 시절이 있었는지

망망한 대해를 향하여 거침없이 달려간 시절이 있었는지

갈매기는 난간에서 졸기도 하고 / 흰 수염 고래들은 앞서거니 뒷 서거니 하고

수시로 모양을 바꾸는 구름을 친구 삼아/ 심해의 교향곡을 연주하던 시절

한 동안 내게도 황홀한 순간이 있었는지

아스라한 이어도를 향하여 가쁜 숨을 쉬기도 하였는지

태고의 시간은 몰아치며 스치었고/ 소금기 배인 몸을 파도에 기대면

뛰어 오르는 날치들과 달리기도 했었던/ 한동안 내게도 그러한 때가 있었다고

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야기

여전히 파도는 넘실대고 구름은 일렁이건만/다시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 몸

무엇이 나를 사구 위에 허물어지게 만들었는지

아직도 가끔 들려오는 전설의 이야기는/구멍 뚫린 옆구리를 지나 스러져 버린다

_<폐선(廢船)의 전설> 전문

지금은 비록 초라한 모습일지라도 누구에게나 전성기라는 시절이 있으며 전성기를 지나면 쇠퇴기라는 것 또한 있기 마련이다. 이 배 역시 성난 파도나 강한 바람 따위는 능히 이겨 나가며 힘차게 돛을 올리며 망망대해를 주름잡던 옛 영광과 열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 앞에 모든 것은 빛이 바랬고 남은 것은 움직이지 못하는 무력감과 제 기능을 잃어버린 폐물뿐이다.

이 시를 쓰면서 한때의 당당했던 배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과 무엇이 다르랴 싶었다.

세상은 매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변함없는 연속성의 연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 속에서도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산 정상에 올라서면 내려 올 일이 남아있듯이 인간 누구에게라도 그러한 원칙이 적용되는바, 항시 젊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음이 가면 노년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치를 쓸쓸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텔레비전 앞에서 반쯤 졸면서 신작보다는 클래식 영화만 줄기 장창 고집하며 보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다 남편보다 더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늙은 개의 모습을 바라본다. “모기야” 하고 이름을 불러도 들리지 않는지 뒤돌아보지 않는다. 이제는 보고 듣는 것보다 감각을 더 의지하는 애견을 끌어안고 “모끼야 아프지 말고 더 늙지도 말고 나랑 오래오래 살자. 사랑해 “ 하루에도 수 십번 중얼거리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아직도 항해가 가능한 열정을 가지고 사구에 얹힐 때까진 파도와 바람을 헤쳐나가며 멋진 삶의 항해를 계속하리라. (elkimsocie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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