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세상에 얼음물 한 잔 같은 글을
- .
- Nov 19, 2020
- 2 min read
이계숙의 일상(日常) (미시유에스에이 필진)

주간현대 대표님으로부터 칼럼을 한 번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들었을 때 일단 대답을 유보하고 숨을 좀 골라야 했습니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을 정도로 성질이 급해 뭐든지 앉은 자리에서 후딱후딱 해치워야 하는 나지만 이 제의에는 금방 결정을 못 내리겠더군요. 기쁘고 반갑기는 했지요.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서 10년 넘게 마주해 오던 북가주의 독자님들을 다시 만날 기회였으니까요. 그러나 나를 망설이게 했던 것은 가볍고 경박하고 별 깊이나 교훈이나 철학도 없는 글이 주간현대에 누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문화의 불모지인 이 새크라멘토에 유일하게 한글로 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주간현대를 나는 매주 읽습니다. 그냥 읽는게 아니라 광고까지 거의 샅샅이 공들여 읽습니다. 신문을 펼쳐 들면 제일 먼저 찾아 읽는 글이 주간현대 대표님의 글, 김동옥 회장님의 서울 이야기, 그리고 각 칼럼니스트의 글. '미시유에스에이'란 여성 사이트에 고정칼럼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남의 칼럼을 읽는 것도 소중한 시간입니다. 독자들과 칼럼니스트들의 기호나 시대의 흐름을 탐색해 볼 수 있고 아이디어를 제공 받을 수 있거든요. 모두 다 수준이 넘칩니다. 책을 많이 읽고 해당 주제를 쓰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한 티가 역력하게 나타납니다. 그런 쟁쟁한 글들 속에 '아줌마들 미용실 수다' 같은 내 글이 독자님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면 어쩔까, 하는 기우가 생겼던 겁니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은 고인이 된 이재상 전 중앙일보 편집위원님의 말이 떠오르더군요.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글이란 무조건 재밌고 쉬워야 해. 이계숙 씨 글이 바로 그런 글이야. 묵직하고 깊이 있는 글을 읽고 싶은 사람은 철학책이나 성경을 읽으면 되고".
사실은 나부터 그렇습니다. 살아가는 일이 갈수록 힘들고 녹록지 않다 보니 골치 아픈 건 싫어요. 어려운 건 싫어요. 골똘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싫어요. 금방 따라갈 수 있는 게 좋습니다. 쉬운 게 좋습니다. 이 위원님 말대로 내 글은 쉽습니다.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국수 한 그릇 들이키듯 금방 후루룩 읽히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단 평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주간현대를 통해 우리 이민자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로요. 열심히 쓰겠습니다. 아, 바로 내 얘기야, 하고 무릎을 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고급스럽게 멋있게 근사하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어려운 단어 쓰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쓰겠습니다. 매주 첫째, 셋째 주 한 달에 두 번 게재되는 '이계숙의 일상(日常)'을 애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달에 두 번으로 시작했지만, 독자님들의 성원이 높아지면 매주가 될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로 답답하고 갑갑하고 우울한 독자님들의 삶에 '이계숙의 일상'이 한여름에 들이키는 얼음냉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Komment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