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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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r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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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숙의 일상

올봄, 집 공사를 했다. 앞뜰에 자리 잡고 있던 큰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계단을 만들고 잔디를 걷어낸 후 키가 작은 나무를 심었다.그리고 앞뜰 전체에 자갈을 깔고. 분수도 세웠다. 그리고 집안은 회색으로 페인트를 다 칠했다.
역시 돈을 좀 들이길 잘했다. 보름 만에 멋지고 근사한 집이 되었다. 페인트는 하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명함만 한 샘플만 보고 색깔을 골라야 했기에. 다 칠한 후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우리 집 가구랑 어울리지 않으면 어쩌지. 막상 끝나고 보니 괜한 기우였다. 썰렁하고 휑 등 그래한 느낌을 주던 집안 분위기가 아늑하고, 세련되게 변했다.
앞뜰도 남편은 일절 관여하지 않고 나 혼자 디자인해서 조경사에게 맡겼는데 이 역시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구경할 만큼 멋지게 나왔다. 한 이웃은 우리 집하고 똑같이 앞뜰을 꾸며야겠다면서 조경사 연락처를 달라고 할 정도였다. 역시 내 아내 미적(美的) 감각은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다고 남편도 감탄해 마지 않는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디자이너 쪽으로 공부를 해 보란다.
자랑 잘하는 내가 가만 있을쏘냐. ‘월남 국수’ 해준다는 핑계로 지인들을 불러 모았다. 집을 둘러본 사람들이 '여자와 집은 돈을 들여야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다', '모델 하우스가 따로 없다.', 입 모아 덕담을 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은 다르게 말했다.
“집이란 그냥 잠만 자는 곳인데 왜 자꾸 돈을 처들이는지(그는 분명히 그렇게 표현했다) 모르겠네. 몇 년 전에도 바닥이랑 부엌 카운터탑을 교체하지 않았어? 나라면 현찰을 가지고 있든지 투자를 해서 돈을 더 불리겠다….”
나는 대답했다. 내가 바깥출입을 잘 안 하고 집에만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내겐 집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그가 또 말했다. 그렇다 해도 집에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 난 절대 집엔 돈 안 들여. 비 안 새는 지붕하고 바람 막을 벽만 성하면 되지…."
그 지인으로 인해 크게 느낀 게 있었다. 부부에겐 인생의 중점을 어디에다 두는가가, 즉 가치관이 같은 게 참 중요하구나 하는 것.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그게 맞는구나, 하는 것. 내 남편이 그 지인 같은 사람이었다면, 그러니까 집에 돈 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거나 근검절약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공사를 시작할 엄두도 내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직도 멀쩡한 것들을 왜 갈아치워? 여편네가 어떻게든 돈 쓸 궁리만 하고 앉았네, 하는 남편이었다면 말이다. 따라서 나는 불만과 불평이 넘쳤겠지.
그러나 이번 집 공사를 함에 있어 우리는 일체 이견이 없었다. 아등바등 아끼기보다는, 여행하기보다는, 투자를 해 돈을 불리기보다는 오늘을 누리고 즐기는 일이 우리의 삶에 있어 더 큰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게 남편과 나의 일치한 생각이었다. 집을 내 맘에 들게 꾸미는 일이 우리 삶에 있어 제일 우선이라는.
남녀가 ‘부부’란 이름으로 만나 평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많은 대답이 있을 것이다. 대화가 통해야 하고 성격이 맞아야 하고 취향이 같아야 하고 경제 능력이 있어야 하고 등등. 한 할배한테 물었더니 한참을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코드’가 맞아야 할 것같다고. 코드라. 가치관이 맞아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인데 참 막연하고 광범위하다. 코드에는 위에 말한 성격, 취향에다 취미, 습관, 입맛, 하다못해 취침과 기상 시간까지 다 포함되는 것 같으니까.
어쨌든 맞는 말이다. 부부는 반대로 만나야 잘 산다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반대로 만나 잘 사는 부부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는 비슷해야한다. 할배 말대로 코드가 잘 맞아야 한다. 그중 가장 잘 맞아야 하는 것은 인생의 우선순위 코드. 취미생활이야 따로따로 할 수 있고 취향이나 입맛이야 서로 존중하고 절충하면서 맞추어 간다지만 인생의 코드가 다르면 참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오지에서 봉사하며 사는 부부들을 잡지에서 종종 본다. 우리가 보기엔 고생을 사서 한다 싶은데 정작 그들은 무척 행복하고 보람에 차 있다. 왜냐면 그들은 ‘남을 위한 삶’이란 코드가 맞았기에. 그런 삶을 인생의 우선순위에 두었기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부부의 인생 우선순위 코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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