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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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p 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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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 김 (좋은나무문학회징)

지난 달 어느 아름다운 토요일, 나는 문학회,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이스트 베이 공원 국 주체로 열린 다민족 걷기 행사(Multicultural Wellness Walk by EBRPD)에 참석을 하였다. 일년에 4~5번 있는 이 행사가 코비드19 영향으로 1년 반 만에 다시 개최되었는데 장소는 프리몬트에 있는 코요테 힐스 공원(Coyote Hills Park)이었다.
이곳에 넓게 펼쳐져 있는 습지에서 밀려오는 해무와 저 멀리 보이는 산 마테오 다리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오래된 가뭄으로 인해 공원의 물이 거의 말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끊임없이 철새들은 북쪽에서 날라와서 이곳 호수에 내려앉곤 한다. 그러나 가뭄이 계속되다가는 철새들이 갈 곳이 없어질까 걱정이다. 작은 계곡들은 이미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져 있었고 곳곳에 고사한 나무들도 있었다.
이러다가 오래 전에 본 다큐 영화 “불편한 진실”처럼 이곳도 사막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사막화는 우려를 하면서도 사막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막과 광야의 황량함과 고독,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뜨거운 태양도 견뎌내는 처절함의 매력에 반해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데스 밸리의 badwater basin에 갔을 때 그 짜디짠 소금 밭에도 수도 없이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들을 보면서 경탄을 머금은 적이 있다. 또한 아리조나의 웨이브(The Wave)나 캐년의 사진을 찍기 위해, 그곳을 운전하여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나는 사막과 광야 앞에 서면 느끼게 되는 떨림을 그리고 그 영감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매번 갈 때마다 내가 결단력만 있다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까? 뉴 멕시코 산타페에 정착을 하여 죽는 날까지 사막 속에서 살며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를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가 보다.
그녀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가능하다면 가끔은 그렇게 문명을 떠나 고요 속에서 느끼는 창조적 슬픔을 느끼며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이곳에서 이렇게 먹고 살기 위해서 애를 쓰는 건지 회의적일 때가 있다. 그러한 생각이 짙어 질수록 통나무 집을 짓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갔을 오키프란 화가에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나는 느낀다.
조지아 오키프는 시골에서 미술교사로 재직중 알프레드 스티클리츠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알프레드 스티클릿츠가 누구인가? 사진계의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는 그는 이미 뉴욕에서 화랑을 경영하며 이름을 날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는가? 오키프가 그린 그림을 우연히 보게 된 스티클릿츠는 그녀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 그는 그의 화랑에 그녀의 작품을 전시하고 그녀의 사진을 찍으면서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이혼을 하고 23살이나 어린 오키프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워낙 바람둥이였던 스티클릿츠는 몇 년 안에 다시 오키프보다 18살이나 어린 다른 여인을 만남으로써 오키프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된다. 오키프가 그로부터 받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그녀는 마음의 병을 얻고 뉴 멕시코로 자주 여행을 하였다. 구르는 덤불, 황량한 모래언덕과 죽은 동물의 메마른 하얀 뼈가 여기 저기 널려있는 곳. 휘몰아치는 바람과 타는듯한 태양, 그리고 정적감은 그녀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주었을 것이다. 그녀의 슬픔은 예술혼으로 더욱 승화가 되었을 것이다. 가끔 사막에 가면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수도 없이 느끼곤 했으니까 말이다.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모양새를 바꾸는 사구와 내려 쬐는 태양아래 묵묵히 서 있는 선인장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생명을 가지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뱀과 토끼와 각종 동물들. 그래서 어쩌면 사막은 새 생명을 다시 담아내는 주머니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듯이 말이다.
오키프가 85세 때 그녀의 비서로 들어온 젊은 청년 해밀턴은 그녀보다 자그마치 58세나 아래인 27살이었다. 해밀턴은 그녀가 99세로 이 세상을 등질 때까지 13여 년의 시간을 늘 함께하는 소울 메이트며 연인이었다고 한다.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그녀. 그런 그녀에게 27살의 청년은 연민과 사랑 그리고 존경심과 또한 그녀를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을 어찌 안 느꼈겠는가?
L씨와 조지아 오키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공원을 걷다보니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되어 버렸다. 암만 내가 사막 예찬론자이어도 역시 캘리포니아는 캘리포니아 답게 비나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멀리 사슴 몇 마리가 산등성에서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이승윤이 부른 “물”의 가사처럼 “물 물 물좀 줘요 목말라요” 하는 것 같다.(elkimsocie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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