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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2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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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n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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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식 컬럼


<1> 세상이 왜 이래?


지금 한국에 있는 일군의 친구들은 은퇴 후 귀농하여 텃밭을 가꾸거나 소규모 영농으로 재미를 삼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얼마 전에는 소규모 영농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기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주말이면 지방에 마련해 놓은 텃밭으로 농사일을 다니고 있는데- - - -

어느 날 작황을 둘러보다가 블루베리 밭에 눈길이 멎었다. 자세히 보니 오늘 수확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고 다음 주말이면 적당할 것 같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했다.

'다음 주말에 와서 수확을 할테니 그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거라. 알았지?'


그렇게 저렇게 수확한 땀의 결실을 또 다른 이웃, 영농하는 친구들과 나누곤 했기 때문에 그 날도 블루베리에게 다짐을 하고는 누구누구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서울로 돌아왔다.


다음 주말이 되었다.

수확한 블루베리를 나누어 줄 이웃을 머리 속에 그리며 차를 몰았다.

농장에 도착한 그는 제일 먼저 블루베리 텃밭을 찾았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지 탐스럽게 익어서 매달려 있으리라고 그렸던 그의 환상은 순식간에 깨져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살펴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블루베리 열매들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얘들아, 어디 숨었니? 장난 그만하고 이제 나오너라.'


한여름 내내 돌보고 가꿔왔던 자식 같은 블루베리를 불러 보았지만 그 이름은 허공 중에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블루베리가 무슨 선녀의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갔을리도 없고 - - - - -


그는 분노와 슬픔과 아픔이 버무려진 복잡한 심경으로 망연자실한채 밭 가운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2> 함께 밥 먹는 사람


그는 대학 동기지만 서로 교제가 없어 친하지 않았다.

서먹한 사이로 학부를 마치고 사회로, 혹은 군대로 갈 길을 찾아 나서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나는 미국행을 했으니 그와의 인연은 끊어진 것이나 한가지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50년, 반세기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는 요즘 또 다른 대학 동기의 초청으로 단톡방에 가끔 드나들고 있다.

그 방 친구들은 나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친구 중 한 명이었는데 졸업앨범을 찾아보고 나서야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의 상봉은 그렇게 허공 중에서 이루어졌다.

단톡방은 대부분 문자로 하기 때문에 올리는 사람의 분위기를 글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창밖에 가을비 오는 소리/ 가로수 젖은 낙엽/ 가을이 가는 소리/ 그대의 슬픈 몸짓으로/ 임이 가는 소리 벤치에 날리던 날/ 고운 단풍으로 지는 허전한 내 마음- - - - '

(만추) 부분


들릴듯 말듯하게 두런두런 가을을 읊조리는 그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끼니 때 되면 배가 먼저 알고/ 부엌 문 열어 보란다/ 정지 무쇠 솥에 밥 짓는 어머니/ - - - - - 내 뿜는 서린 김이 풀풀 소리내며/ 코끝으로 들어온 어머니 냄새다.'

(밥 익는 냄새) 부분


어떤 기교나 수식이 없는 평범한 말을 글로 풀어낸 그의 작품을 읽으며 그가 시인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함께 밥먹는 사람'이라는 시집을 출간했으니 한 권 보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엊그제 우편 함에는 그가 보내온 시집이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 것 아닌 일로 다툼 있어도/ 그 마음 내게 먼저 다가와/ 사랑하는 마음이 됩니다/ - - - - 그 사람 병마와 밀당하고 있습니다/ - - - 난 흰 파뿌리 약속 지키라고 힘내라며 위로도 합니다/- - - -고향 둔치에 가서/ 하얀 집 짓고 살자고 합니다/' (함께 밥 먹는 사람) 부분


남이 땀흘려 지은 블루베리 농사를 대신 수확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가꿔온 '시농사의 열매'를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친구도 있다.

나는 오늘도 한국 쪽 하늘을 바라보며 작은 상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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