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자유가 넘쳐서 괴로운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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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v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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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계숙

회사에서 두 사람이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쿠폰을 보내왔다. 1년동안 재택근무하느라 고생했다면서. 회사에서 온 이메일에 우리집 집코드를 넣고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백 여개의 식당이 뜬다. 우리집 반경 20마일 내에 이렇게 많은 식당이 포진하고 있는 줄 몰랐다. 즐거운 마음으로 식당 고르기에 들어갔던 나는 곧 포기하고 남편을 불렀다. 남편이 원하는 식당을 선택하라고. 선택권이 너무 많으니까 도대체가 결정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 처음 와서 제일 두렵고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권총강도도 아니고 인종차별도 아닌, 선택의 자유가 너무 많아서 겪어야만 했던 문화적 충격이라고 말하겠다. 일단 미국식당에 가 보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해장국이면 해장국, 비빔밥이면 비빔밥, 그냥 한 마디로 주문이 끝나는 한국식당과는 달리 미국식당에는 밥 한 끼를 먹기위해 선택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메인디쉬는 그렇다치고 대여섯가지가 넘는 드레싱과 수프, 그리고 디저트 중에서 원하는 음식을 고를 것을 끊임없이 요구 받는다. 지금이야웨이츄레스한테 농담까지 해가면서 느긋하게 척척 시킬 수 있지만 처음 몇 년 동안은 미국식당가는 게 크나큰 스트레스였었다. 미국 와서 처음부터 매끄럽게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미국 온 지 일 주일만에 갔었던 식당의 웨이츄레스 앞에서 헤매던 기억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친지가 미국 온 걸 환영한다며 자기딴엔 큰맘 먹고 데려간 미국식당이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름이 적인 메뉴를 한참이나 들여다 보면서 고군분투하다가 그래도'스테이크' 가 제일 눈에 익은 음식이라 이것을 주문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혹시 내 발음이 엉성해 웨이츄레스가 못알아 들을까 봐메뉴에 적인 번호까지 짚어주며 주문을 했는데 웨이츄레스는 할 일이 더 남았다는 듯 연신 날 쳐다보며 무엇이라고 더 묻는 것이었다. “스테이크를 어떻게 구워 줄 거냐고 묻는데?" 친지의 도움으로 '중간 정도' 로 구워 달라고 대답하고 한숨을 돌리는데 웨이츄레스는 그래도 떠날 줄을 모르고 계속 나를 보며 무엇인가를 물어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수프를 먹을 거냐, 샐러드를 먹을 거냐? 수프를 먹을 거면 사이즈는 뭘로 할 것이며 샐러드를 먹을 거면 드레싱은 뭘 원하냐' 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는 친지의 도움을 받아 진땀을 흘려가며 대답을 하는데도 연신 다른 질문을해대는 웨이츄레스가 정말 공포스러웠다.
이런 경험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초기 이민자들과 식사라도 하게 되면 그들은 한사코 중국식당이나 한국식당만을 고집한다.끝없이 물어대는 미국 식당 웨이츄레스를 상대하기가 너무 겁난다는 것이다. 어떤 이의 미국식당 경험담은 누가 들어도 배꼽을 잡는다.웨이츄레스가 'soup or salada' 를 묻는데 연신 '예스,예스' 를 연발했다는 이야기이다. 그 사람한테는 '숩 올 샐러드' 가 꼭 '슈퍼 샐러드'즉 큰 양의 샐러드로 들렸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의 이야기는 차라리 연민마저 들 정도이다. 그는 미국에 살려면 적어도 음식 주문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하고는 미국식당을경영하는 친구로부터 음식 종류며 수프, 그리고 드레싱 종류를 가르쳐 달라고해서는 부지런히 외웠단다. 그리고는 날을 잡아서 부인을데리고 뻐기며 미국식당에 갔단다. 영어 못한다고 은근히 자기를 무시하는 기색이 있는 부인 앞에서 호기롭게 주문을 해보일 작정이었다. 그동안 배운대로만 하면 절대 실수할 일은 없겠지하며 착착 주문을 해나갔는데 나중에 ' 팻 프리 드레싱을 줄까. 보통 드레싱을 줄까?' '구운감자에 치즈와 사워크림을 넣어 줄까, 아니면 버터를 넣어 줄까?' 라고까지 시시콜콜 물어오는 데는 질리고 말았단다.
미국에서 사소한 것을 선택할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게 슈퍼마켓 캐쉬어가 물건을 담기 전 반드시 '플라스틱 백, 아니면페이퍼 백으로 줄까?'라고 물어오는 일이다. 첨엔 그 말이 무슨말인지 몰라 얼마나 당황했었던지. 한국에선 플라스틱을 ' 비니루 ' 라고하지 않던가. 종이든지 플라스틱이든지 자기네가 잘 알아서 담아주면 될 건데 꼭 이렇게 매번 물어봐야 할까.
선택의 자유가 너무 넘쳐서 괴로운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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