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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가니 남편이 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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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n 19, 2022
  • 2 min read

글: 이계숙


대대적인 앞뜰 공사를 했다. 잔디를 걷어내고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키 작은 나무와 화초들을 심고는 전체에 자갈을 까는 공사. 캘리포니아가 가면 갈수록 강수량이 적어지면서 가물어지는 것 같아서 물을 좀 아껴보려고. 또한 집 입구를 시멘트 계단으로 만들었는데 시멘트와 자갈만으로 온통 칠갑을 해놓으니 너무 삭막하고 메말라보이는 것같아 한쪽에 작은 분수를 설치했다. 분수에 물이 좀 들긴하지만 여름에 매일 틀어대는 스프링클러만 할까. 재택근무로 집에서 혼자 일 하는 게 아주 답답했지만 앞뜰 공사를 한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일하는 방 창문으로 앞뜰 전체가 넓게 보이기 때문이다. 분수에서 솟구치는 물줄기와 깨끗한 자갈과 작은 꽃들이 기분을 좋게 한다. 2년 넘게 방에 갇혀 일하면서 건조해지고 황폐해진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다. 돈 들여 공사한 보람이 아주 크다. 문제는 남편이다. 남편이 강아지들을 앞뜰로 데리고 나가 배변을 시킬 때. 동네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공사 끝난 앞뜰을 멋지다며 칭찬할 때. 미국사람들이 그렇듯 그들의 칭찬이라는 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게 대부분이다.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인 바람처럼 가벼운 그런. 몇 마디 한 후 바이바이 손 흔들고 가버리면 끝인 거다. 그런데 남편은 이 사람들을 안 놔 준다. 물고 늘어진다. 한번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하면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디테일한 얘기까지 한도 끝도 없이 늘어 놓는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강아지와 산책할 때도 그렇다. 사람들이 가끔 우리 강아지들에 대해서 뭐라고 언급을 할 때가 있다. 남편은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한국에서 데려온 유기견인데 입양절차는 어땠으며 미국까지 어떤 방법으로 데려왔으며 배변교육은 또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숨도 안 쉬고 좔좔좔 읊어댄다.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나는 따분함을 눈치챈 나는 조바심이 나서 미친다.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 된다. 그 사람들은 얼마나 곤욕스러울까. 별로 흥미로울 것도 없는 남의 강아지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장시간 듣고 있어야 하니. 하도 기가 차서 한 지인한테 남편의 이런 점에 대한 흉을 보았더니 그녀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늙어서 그래. 남자들이 늙으면 말도 많아지고 주책스러워져. 여성 호르몬의 영향이라나봐... 그러고보니 최근들어 남편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사복형사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날카로운 생김새처럼 감정기복이 거의 없고 과묵하던 사람이었다. 그에게서 가장 큰 매력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그 진중함과 과묵함이었다. 그랬던 사람인데 웬걸, 언제부터인지 수다가 말도 못하게 늘었다. 말 못하다가 죽은 귀신이 붙은 것 같다. 얼마전 이웃의 저녁초대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자녀없이 강아지들을 키운다는 이유로 최근에 친해진 이웃이다. 맛있는 음식과 질좋은 와인이 어우러진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상대방이 말할 기회도 없이 혼자 말하는 남편때문이었다. 대화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을 무시하고 거의 두 시간 가까이를 떠들어대는 남편.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의 말을 경청하는 부부였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지루해 했을까. 보다못한 내가 중간중간에 끼어들어 그 부부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지만 금방 대화의 주도권은 남편이 빼앗아 간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나야말로 말 많고 호들갑스럽고 수선스럽고 목소리가 엄청 큰 사람이었더랬다. 나와 직접적인 연관있는 사람들은 물론, 온세상사를 참견하고 분석하고 결론 짓느라 입이 바빴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서 모든 사물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반면 남의 사정을 이해하고 관조하는 여유와 너그러움도 생겼고. 그들만의 사는 방법이겠지.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야.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렇게 되니 예전처럼 침 튀기며 설전할 일도, 바득바득 우길 일도, 기를 쓰며 설명할 일도 점점 없어진다. 말 수가 줄어 든다. 꼭 말 해야 될 일이 생겨도 그냥 넘어가게 된다. 성가시고 귀찮아서. 기력이 딸려서. 그런데 왜 남편은 오히려 반대가 될까. 꼿꼿하던 등은 구부정해지고 아마존 밀림같은 머리카락도 성글어지고 한때는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같이 잘 생겼던 얼굴은 주름으로 뒤덮이며 볼품없어지는데 입만은 더 왕성해지는 것 같은 남편. 이 일을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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