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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의 등불같은

Updated: Mar 18, 2022

글: 이계숙


이 현대뉴스 외에 미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한 웹사이트에 10년 넘게 칼럼을 쓰고 있다. 퍼내도 퍼내도 고갈되지 않는 샘물처럼 소재는 항상 무궁무진하고 쓰는 일도 전혀 힘들지 않는데 나이가 드니까 한 달에 두 번, 마감 맞추는 게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4백회로 칼럼을 닫겠다고 했더니 독자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들의 성화와 읍소에 마음을 바꾸어 1백회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작년인가. 이런저런 이유로 이 현대뉴스 칼럼을 중단하겠다고 발행인에게 통보한 일이 있었다. 발행인이 만류했다. 안 됩니다. 그만 두면 안 됩니다. ‘이계숙의 일상’이 이 동네에서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자랑 잘하는 내가 입 다물고 있을소냐. 늘 내 글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할배들한테 침을 튀기며 자랑했다. 예수도 고향에서는 핍박받고 설움받았듯이 이 동네서는 별것 아닌 존재로 취급받는 이계숙이가 다른 동네서는 칼럼니스트로서의 위상이 높디 높다고. 한 할배가 버럭 했다. 그러면 네가 예수란 말이냐?

그렇다. 예수도 자기 사는 동네에서는 대접받지 못했다. 아무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다. 손가락질에 돌팔매질을 당했다. 그러나 여기, 자기 사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지난번 글에 썼던 박만기할배다. ‘거목이 스러졌네’란 글이 나가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글에 예를 들었던 것처럼 박할배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사람들의 전화였다. 한 한인단체를 이끌었었다는 K씨는 박할배가 단 한 번도 자신들의 기부금 요청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는 말을 전했다. 그것도 수고한다고 등까지 두드려주며 매번 웃는 얼굴로 기부금을 내주었다고. L씨는 자신의 가족 역시 이민 초기, 박할배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사건, 사고가 생기면 제일 먼저 도움을 구하러 달려간 곳이 박할배네였다고. 그녀가 말했다. 이 동네에 박할배의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가정이 없을 거라고.

김홍섭 씨는 장례식을 마친 날 저녁에 전화를 걸어왔다. 미국생활 40년 넘도록 직장일을 빠지면서까지 장례식에 참석한 경우는 이번 박할배가 유일할 거라는 김홍섭 씨. 그는 장례식에서 흐르던 눈물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덤덤하기만 했었는데 세상에 태어나 이번처럼 많이 울어보기는 처음이었단다.

지금은 정부직장에 다니면서 여유롭고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몇 십년 전, 아이들이 어릴 때. 정말이지 콩 튀듯 팥 튀듯 정신없이 돌아칠 때 예고도 없이 차가 고장나는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박할배는 자신의 정비소에 수리해야 할 차들이 잔뜩 밀려있어도 김홍섭 씨의 차를 일 순위로 고쳐주었다고 했다. 먹고사는데 차가 생명인 그의 사정을 십분 헤아려준 것이다. 죽어도 박할배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김홍섭 씨.

박할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더 깊이, 더 높이, 더 두텁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 특히 한인들이 박할배를 존경했던 첫 번째 이유는 한인들한테 늘 나누어 주고 베풀어 주면서도 그동안 단 한번도 앞에 나서는 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늘 말이 없었다는 점이다. 김홍섭 씨가 말했다. ‘이계숙 씨가 한 시간 떠들 분량이 그 분한테는 한 달 말 할 분량이었다’고.

잘나지도 못한 인간이 잘난 척하는 꼴은 당연히 보기 싫지만 잘난 인간이 잘난 척하는 꼴도 사실은 보기가 싫은 법이다. 가만히 있어도 잘난 걸 알아줄 텐데 잘났다고 앞에 나서면 괜시리 반감이 생긴다는 말이다. 만약 박할배가 나 이렇게 잘났소, 나 이렇게 베풀었소, 나 좀 알아 주소, 고개들고 설쳤다면 현재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을까.

사실은 나도 후하다는 평을 받는 편이다. 주위사람들한테 밥 잘 사고 잘 주고 한인사회에 기부금도 잘 내고(지금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내가 박할배같은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입으로 산통을 다 깨버리고 마니까. 어떤 선행을 했다치면 그 일을 자랑하고 싶어서 미친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행한 일을 소문내야 직성이 풀린다. 박할배처럼 가만히, 바위처럼 묵묵히 있어도 사람들은 다 알아 줄건 데. 마치 어둠속에 켜진 등불이 다 밝소 , 광고 안 해도 사람들이 다 알고 모여들 듯이. 어둠 속에 켜진 등불같은 존재였던 박할배. 나도 등불같은 존재가 되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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