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음악적이지 않은 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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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c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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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주대식

지난 초가을, 아마 10월 중순경이었을 것이다. 교회에서 누가 나에게 물었다.
'헨델의 메시아와 베토벤의 합창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세요?'
'메시아는 라이브로 극장에서 여러 번 들어봤고- - - - 그래도 합창이 더 좋지. 학교 다닐 때 음대 관현악단과 600명 합창의 감동이 늘 내가슴에 좋은 기억으로 있어요.' 그리고 대화는 다른 말로 이어졌다.
지난 주 말에 그가 다시 은근히 접근하더니 내 코트 주머니에 뭔가를 쑥 찔러 넣어준다.
'?'
'아- 그 합창- - - -'
그제서야 나는 그게 샌프란시스코 데이비스 심포니홀에서 매 연말에 공연하는 베토벤의 9심포니 티켓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런 고마울 데가 - - - - 그는 매년 이런 뜻밖의 선물로 나를 놀래킨다.
표를 꺼내보니 $115, 두 장이면 $230 - - - -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지난 토요일 (11/27/2021)
나는 샤워를 하면서 면도까지 말끔히 한 후 로션을 바르고 음악회에 갈 채비를 했다.
물론 셔츠에다가는 향수도 살짝 뿌렸다. 이런 날은 왠지 기분이 들뜬다. 흥얼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 * *
처음 30분은 어느 현대 음악인의 곡으로 좀 난해했다. 불협화음의 흐름 - - - -
난 아직 이런 음악에 친숙하지 않다.
연주가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본격적인 합창 교향곡이 시작됐다.
대충 흐름은 알고 있지만 공연에 오기 전에 유튜브에 들어가 카라얀의 베를린 악단의 연주로 두어 번 '예습'했다.
1,2 악장을 거쳐 오는 동안 무심코 들었던 팀파니의 연주를 '보면서 들으니까' 악장의 메인 테마는 '북(팀파니)'라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빠르게 나부끼는 현악기의 음률은 무성한 나뭇잎이었다.
차이콥스키의 1812에 대포가 터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합창에서 팀파니가 그렇게 흐름을 이끄는 줄은 몰랐었다.
현악기의 음표가 바람에 흩날리는가 하면 갑자기 북소리가 분위기를 제압하며 샛길로 빠지려는 감성의 실개천을 큰 흐름으로 끌어들인다.
3악장
젼혀 다른 분위기의 음률이 그동안 긴장했던 나를 차분하게 다독인다.
수필로 치면 기 승 전 결 중 '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1,2 악장이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다면 3악장은 우아한 60대 여인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 * *
이어서 4악장,
9번 교향곡의 절정이 비로서 떠오르기 시작한다. 지휘자의 동작이 화려한 불꽃 같다.
이런 경우 우리는 오케스트라를 '들었다'고 하지 않고 '보았다'고 말한다.
솔로와 합창이 어우러진 4악장은 나름대로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을 풀어내며 청중들로 하여금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들었다놓았다 한다. 드디어 지휘자의 큰 동작으로 모든 연주가 끝났다.
청중들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함성과 함께 기립 박수을 터뜨린다.
무대 뒤로 사라졌던 지휘자가 다시 나타나서 깊게 허리를 숙여 나에게 인사한다.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박수를 치며 사례한다.
'원 무슨 말씀을- - - - , 좋은 음악, 친밀한 음악 들려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무대 중앙에 서서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들도 한참 동안 선 채로 마치 흩날리는 꽃가루 같은 우리의 박수세례를 거부하지 않았다.
* * *
한 편으로는 아쉽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을 뒤로하고 극장 문을 나섰다.
같이 앉았던 일행 중의 한 명이 말했다.
'아- 참! 사람의 목소리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정말 놀랍죠?'
내가 아는 체 하며 받았다.
'인간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라고 말한 사람이 있답니다.'
우리는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각자 주차장으로 헤어졌다.
집사람은 내 팔장을 끼고 천천이 걷는 내 걸음에 보조를 맞추며 따리왔다. 말은 안했지만 아직도 합창의 여운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샌프란시스코의 밤 공기는 약간 쌀쌀했지만 오랜 만에 '귀호강'을 한 우리는 훈훈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오는가봐.'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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