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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손자와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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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ct 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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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 트]

일 년에 적어도 두 번은 아버지 산소에 간다.

봄에는 한식에, 가을에는 추석에 맞추는데 올해는 조금 늦어졌다.

추석 전후로 무슨 일로 바빴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분주했던 것 같다.

이번 주는 신문이 휴간인 주이기 때문에 월요일 아침부터 서둘러 다녀왔다.

집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드라이브하는 거리인데 봄에는 프리웨이 주변이 온통 그린으로 물들어 볼거리가 되고, 가을에는 모든 언덕이 황금빛 골드 색으로 변해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 가르마를 가르듯 물결친다.

그래서 나는 산소에 가는 길을 좋아하고, 즐긴다.

올해 추석에는 아버지가 증손자를 만났다.

물리적으로 만날 수는 없어도 사진과 기도를 통해 만났다.

천국에 계신 아버지가 증손자를 처음 보시고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얼마나 기뻤을까.

아버지는 원래 교편을 잡으셨기 때문에 아이들을 좋아하셨다.

물론 지금은 사제 간에 정이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던 귀한 시대도 있었다.

아버지 생전에 경기여고 제자들이 찾아와서 위로하고 맛있는 식사도 대접했었다.

제자들을 만나고 오시면 그날이 바로 아버지의 생일이나 다름 없었다.

저희 집안 사정을 조금 아는 제자들은 아버지 잘 모시라고 부탁반 농담반 말씀하셨다.

그런 인자한 아버지가 증손자를 보았으니 얼마나 좋았겠나.

한국에 있는 누나에게 산소 사진을 보내니 정말 좋아했다.

증손자를 본 할아버지는 복 받았다고 말하는데 믿어지는 말이다.

가을은 역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버지 산소는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산타로사 근처에 위치한 공원묘지이다.

아버지가 있는 묘지 구역은 생전 교회에서 구입한 묘지이다.

주위에 교회분들과 함께 계시다.

생전에도 주일이면 함께 만나 예배드리고 기도했던 분들이 사후에 같이 있다니 서로 간 외롭지 않고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올해를 넘기면 내년 봄에나 다시 오게 되는데 그동안 증손자가 빨리 자라서 아버지 산소에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로나19가 얼마나 퍼질지, 잠잠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기자도 이제 손자를 보고, 아버지는 증손자를 보시니 먼 나라 이국땅에 와서 자손을 남긴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사후엔 차별이 없기를

가랑비가 뿌리는 산소 앞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백인 여자가 다가와 누구 산소냐고 물었다.

아버지 산소라고 하니 자기 아버지도 이 공원에 묻혀 있는데 아시안이 함께 있는 것은 몰랐다고 했다.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이어서 기자도 내심 당황했다.

그래서 몇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냐고 하니 오래 사셨다고 하면서 긴장이 약간 풀어졌다.

미국 땅에선 어디를 가나 인종 문제가 걸린다.

부부 사이에도 차별을 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농담이다.

이 공원묘지가 백인만의 묘지가 아닌데 왜 내가 그렇게 두근거리고 꺼림직한지 모르겠다.

혹시 아버지도 이곳에서 차별 받으시며 불편해 하실까.

기자는 다시 그분에게 이곳의 역사를 묻고 지역의 특성을 길게 물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분의 놀라움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조금 지나 사후에는 오직 평화만 있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래도 처음과는 다른 밝은 웃음을 보니 기자도 조금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무슨 귀신이 지나갔나. 하루 앞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자 인생의 여정이다..

인종차별은 생전에나 있지, 사후에는 없기를 기원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약간의 해프닝은 있었지만 그래도 산소를 떠나오는 나의 마음에는 기쁨이 충만했다.

아버지는 인종차별 없이 편안히 계실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오늘 증손자도 만나셨으니 얼마나 좋으셨을까.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내년을 기약하며 올가을도 그렇게 익어 가고 또다시 미국 추수감사 절기를 기다리게 된다. hdnewsusa@gmail.com

<김동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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