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밖으로 쓸어버려야 할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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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 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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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숙의 일상

한 여성이 ‘로맨스 스캠’에 속아서, 그러니까 결혼하자고 접근한 사기꾼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이십만 불을 갈취당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십만 불, 그 여성에게는 전 재산일 수도 있을 텐데. 앞으로 그 여성은 어찌 살아갈까. 잃은 돈도 돈이지만 사기꾼에게 바보같이 속아 넘어갔다는 자괴감과 상실감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람을 믿고 신뢰할 수 있을까.뉴스에 ‘로맨스 스캠’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 등 SNS에 노출된 정보로 여성에게 접근해서 돈을 뜯어내는 사기라고 한다. 이들 사기범은 의사, 군 장성, 회사의 CEO 등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군으로 포장하여 아주 신사적으로 접근한단다. 호기심에 여자가 반응하면 그때부터는 당신의 사진을 보고 반했다. 당신은 내가 여태껏 찾던 이상형이다. 이혼(혹은 사별)하고 외로움에 지쳐가던 중 당신의 만나게 됐다. 이는 신의 계시다. 당신만 좋다면 결혼하고 싶다는 류의 달콤한 말로 적극적으로 구애 작전을 펼친다. 남으로부터 도용한 그럴듯한 사진과 함께.의사 가운과 군복을 입은 사진에 여성이 완전히 포섭되었다 싶으면 그때부터 돈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병원을 증축해야 하는데 자금이 좀 모자란다. 조상으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은 게 있는데 어떤 사정으로 묶여있다. 해결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나중에 몇 배로 갚아주겠다. 우리 결혼식에 필요한 선물과 자금을 당신 이름으로 보냈는데 금액이 크다 보니 세관에 걸렸다. 큰 벌금이 나왔는데 내 달라 등등의 그럴싸한 이유를 대면서. 장차 의사 부인, 장군부인, 회장 부인으로 신분이 바뀌게 될 꿈에 부푼 여자는 앞뒤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돈을 송금한다. 목적을 달성한 사기범들은 서둘러 연락을 차단해버리고. 속은 걸 알아차린 후에는 벌써 거액의 돈을 날린 상황.내게도 의사다, 오성장군이라면서 접근한 인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사기꾼이라는 걸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진짜 의사, 오성장군, 회사 중역이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미쳤다고 구차하게 온라인으로 여자를 찾고 있겠나.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예쁜 젊은 여자들이 줄을 설 텐데.
또 하나 쉽게 가짜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던 단서가 있었다. 홍콩에서 진료 활동을 하고 있다는 한 놈은 자신이 의사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하얀 가운 입은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멍청한 놈들. 이왕 사기를 치려면 준비부터 좀 완벽하게 하지. 의사 가운에 진료과목도 없고 이름도 없다. 위에 열거한 이유만으로도 가짜라는 걸 나는 금방 알아냈지만 웬만한 여자들은 넘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여성의 심리와 내면을 정확히 파악한 후 작정하고 덤비는데 누군들 현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생활고와 외로움에 지친 여자들이라면.일상생활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가면서 온라인 사기도 엄청나게 기승을 부린다. 한국의 내 친구는 어느 날, 거의 연락이 없던 조카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부탁 한 가지만 하겠다면서 이모도 힘든 줄 알지만, 사업자금이 급해서 그러니까 3천만 원만 융통해 달라고. 딱 한 달만 쓰고 돌려주겠다고. 오죽 힘들면 생전 돈 이야기를 안 하던 조카가 그런 부탁을 할까 싶었던 친구는 즉시 3천만 원을 송금했겠다. 그리고 돈 잘 받았냐고 연락을 했는데 아무 대꾸가 없더란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친구, 부랴부랴 조카에게 전화했다. 무슨 뜬금없는 말이냐고 되묻는 조카. 말로만 들었던 ‘전화금융사기’이란 사기로 순식간에 돈 3천만 원을 연기처럼 공중에 날린 친구다. 사기는 몇천 달러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전 재산일 수도 있는 금액, 다시 재기할 수 없는 금액, 당한 사람은 물론 가족까지 모두 파멸로 이끌고 가는 금액이다. 오래전 신문일을 할 때, 영주권을 받아 주겠다는 사기범한테 한국서 팔아온 아파트값 등 전 재산을 잃은 한 가족을 취재한 적 있는데 그들의 비통과 절망과 자책과 한탄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처절했다.범죄는 다 나쁘지만, 상대를 속여 환심을 얻은 후 금품을 뜯어내는 사기는 가장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인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인 사기. 교도소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사기범들은 아동성범죄자들과 함께 인간 취급을 못 받는다고 들었다. 살인범들보다 더욱 가혹하게 대한다고 한다. 왜냐면 보통 살인은 과실이나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게 대부분이지만 사기는 상대방의 신뢰와 믿음을 담보로 차곡차곡 계획을 세워서 행하는 범죄이니까. 얼마나 악하면 상대를 해하려고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이 지구의 사기범들은 안 죽을 만큼 패서 지구 밖으로 다 쓸어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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