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를 가려내는 법
- .
- Jun 2, 2021
- 2 min read
이계숙의 일상

‘독야청청하리라’면서 집 전화와 이메일만 고집했던 내가 남편의 강권에 의해 스마트폰을 가지게 됐을 때 주위에서 모두 기뻐했었다. 나랑 연락하기가 쉬워져서 살겠다면서.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입이 한발이나 나와 있었던 나였지만 집 전화와 이메일에는 비할 데 없이 편리하고 신속한 이 스마트폰이라는 ‘신문물’을 금방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점을 꼽는다면 한국의 친구들과 모두 연락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어릴 때 같이 자라고, 같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타지역으로 결혼해 떠나면서, 그리고 나는 미국으로 오면서 소식들이 끊어졌었다. 그런데 ‘카카오톡’을 통해 한 친구와 연락이 닿으니 친구 전체의 연락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외롭고 따분한 미국 생활, 한국의 친구들과 과거를 이야기하고 현재 생활을 가끔 공유할 수 있는 사실만으로 하루하루가 새롭고 재미있었다. 그중 나랑 단짝이었던 ‘희주’와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카톡으로 서로의 건강 상태와 일상을 확인할 수 있어 무척 좋았다.
며칠 전, 여느 때와 같이 희주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록 열어보지를 않는다. 시차를 감안한다 해도 이틀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희주는 식당을 하는지라 영업시간이 끝나는 시간이 거의 자정에 가까웠다. 자정이 지나서도(그쪽 시간으로)내 문자에는 칼같이 답해오던 희주. 무슨 일일까, 걱정이 엄청 되었다. 더구나 팔이 아파서 수술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목숨과는 관계없는 수술이라고는 했지만, 혹시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에. 온 동네 온 세계 걱정은 혼자 다 짊어지는 성격인 나는 만 가지 상상을 하면서 마음을 졸였다. 사흘째 되던 날, 그때까지 희주는 내 문자를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희주 남편에게 연락했다. 희주 괜찮아요? 아무 일 없습니까? 1분도 안 돼 희주 남편 카톡으로 답신이 돌아왔다. 친구야. 내 전화기가 고장 나서 불통이다. 곧 새 전화를 장만할 거다. 나 멀쩡하게 잘 살아있으니 염려 말아라. 거의 일 주일 만에 새 전화기를 샀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희주가 말했다.
“말 마라. 나랑 연락 안 된다고 천지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집으로 찾아와서 내 신변을 확인하고 가는 지인도 있었단다. 이번에 내가 알았다. 어쨌거나 내가 그동안 참 잘 살아왔다는 것을. 나를 걱정하고 염려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내가 잘살아왔다는 증거가 아니겠노? 암, 잘 살았고말고. 한국방문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 모아 희주를 칭찬했다. 인심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주위 사람들한테 나누고 베푸는 데 일등이라고. 손이 커서 배고픈 사람에게 늘 후하게 한다고. 자기 식당 앞으로 지나가는 거지들은 반드시 불러다 밥을 먹여 보낸다고. 그래서 그런지 다른 식당은 늘 파리를 날리고 있는데 희주의 식당만은 늘 손님들로 만원이라고.
예전에 한 할배의 전화도 며칠 동안 안 되던 일이 있었다.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음성녹음을 남기면 몇 시간을 넘기지 않고 리턴 콜을 하던 사람이 몇 번이나 전화하고 녹음을 남겨도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깜깜무소식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걱정이 되었다. 본인은 백살까지 살 거라며 끄떡없다고 큰소리치지만 팔순이 가까운 할배였던지라. 노인의 앞일은 모른다고 혹시 쓰러져서 위독한 건 아닐까. 세상을 떠나버린 건 아닐까.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장례식에서 내가 대표로 조사(弔詞)를 하는 상상까지 했다. 온갖 불길한 상상으로 마음으로 졸이다가 도저히 안 되겠길래 집으로 전화를 해보았다. 멀쩡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할배. 수영장 청소를 하다가 전화를 물에 빠트렸단다. 타 지역에 사는 아들이 와서 고쳐주기만 기다리고 있단다.
희주의 전화를 계기로 '진정한 친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된다면 내 주변 사람 중 누가 제일 안타까워할까. 누가 진심으로 내 신변을 걱정해줄까.
지인들이 여럿 모였을 때, ‘진정한 친구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하고 물어보았다. 설왕설래가 오가는 중 누가 기발한 결론을 내렸다. 차가 고장 났다는 핑계를 대고 새벽 두 시에 전화해보면 안다고. 그때 두말 하지 않고 나를 픽업하러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친구라고. 그 말도 맞는 것 같지만 내 전화가 갑자기 불통됐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로 판단하면 되겠다.
Comentá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