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이 나고 울화가 치솟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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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c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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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숙의 일상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 침대를 정돈하는 일이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정돈해 놓고 나간다. 심한 감기에 걸려 침대에 그냥 머물러있어야하는 경우 빼놓고는 한 번도 이 일을 걸러 본 적이 없다. 침대를 반듯하게 해놓아야만 마음도 정리되는 것 같고 하루가 상쾌하게 시작되는 것 같아서. 지난 며칠 이 일을 안 했다. 전혀 내키지가 않아서. 친하게 지내던 할배가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도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는데 이까짓 침대정리가 무슨 대수랴 싶은 거다. 그동안 크게 가치를 두고 의미를 부여했던 일들이 죽음 앞에서는 다 시시하고 부질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는 거다. 한 지인한테 이런 마음을 하소연했다. 그녀가 대답했다. 난 전기장판을 깔고 거실바닥에서 자기때문에 침대정리를 할 필요가 없지. 겨울에는 세게, 여름에는 약하게 틀고 자니까 허리 아픈 데도 좋고 이불도 보송보송한 게 너무 좋아...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을까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다. 늘 본론과 동떨어진 대답을 하는 지인. 울화가 치민다. 지금 전기장판 얘기가 아니잖아! 관두자, 관둬! 어찌 그리 말귀를 못 알아 듣노?! 안 만난지 몇 달째. 얼굴 잊어버리겠다고 모두 난리다.
코로나로 죽나 외로워서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이니 일단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는데 의기투합했다. 우리집 뒷뜰에서. 한 지인이 밥을 하겠단다. 모두들 기대를 가지고 모였다. 마스크를 쓴 채 뚝뚝 떨어져 앉아서 밥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늦게 도착한 한 지인이 큰 박스 하나를 연다. 박스 안에는 시루떡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시루떡을 한 개씩 돌리기 시작한다. 어른 손바닥만큼 크고 두터운 떡을. 사람들은 배고픈김에 덥썩 받아 먹기 시작한다. 지인이 내게도 떡 담긴 접시를 내민다. 안 먹어요! 하고 나는 인상을 쓰면서 빽, 소리를 질렀다. 밥 먹으려고 기다리고있는 사람들한테 떡이라니, 도대체 생각이 없는 사람같다. 아니나 다를까. 떡으로 배를 채운 사람들이 떡국을 먹지 못 한다. 반 이상을 남긴다. 이 지인은 항상 이랬다,
예전에도. 밥 기다리고 있는데 피자를 사와서 돌린다든지 아니면 찹쌀떡을 가지고와서 돌린다든지. 그런 행태를 보면서도 그동안은 아뭇소리 안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지. 대형 텔레비젼을 샀다. 집에 가지고 와 보니 기존의 텔레비젼 스탠드와 새로 산 텔레비젼의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 가까운 가구점에 가서 새 스탠드를 샀다. 그때가 일요일. 가구점에서 말했다. 다음 수요일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배달해 주겠다고. 돈은 좀 썼지만 새 스탠드를 집에 들일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뭐든지 ‘새 것'을 사면 행복하다. 비록 잠깐 동안이긴하지만.
수요일. 아침부터 기다렸다. 그런데 3시 30분이 넘어가는데 배달차가 오는 기척이 없다. 바깥을 열 두번도 더 내다보면서 4시를 넘겼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가구점에 전화했더니 사정이 생겨서 토요일에나 배달이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면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 기다리는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았단 말이냐. 우리가 재택근무를 하기에 망정이지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집에서 배달트럭 오기만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면 어쩔 뻔 했느냐... 한바탕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혼자 가구점 욕을 들입다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렇게 펄펄 뛸 일이 아니다 싶었다. 주인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나 또한 그렇게 화낼 필요도 없었다. 며칠 늦는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닌데.
요즘은 자주 화가 벌컥벌컥 난다. 그 화나는 일이란 게 위에 예를 든 것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냥 부아가 치민다. 짜증이 난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 죽일 놈의, 이 망할 놈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갑갑하고 막막하다. 출구없는 동굴에 갇힌 것 같다. 그래서 목구멍까지 화가 차 있어서 바늘로 톡, 건드리기만해도 팡, 터진다. 삶이 피폐해지면서 성격도 괴팍해진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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