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오백 년, 풍류가야금
- .
- Jun 9, 2021
- 3 min read
손화영 국악 칼럼

6세기 가야, 가실왕은 우륵(于勒)에게 명하기를, 중국에는 쟁이라는 악기가 있는데 가야에는 가야의 악기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가야의 성음과 문화를 담은 악기를 만들도록 한다. 바로 가얏고라 불렸던 현재의 가야금이다.
이에 우륵은 1곡인 하가라도부터 12곡인 상기물까지 12월 세시풍속의 농경문화를 상징하는 12곡을 만들었다. 현재는 12곡의 악보는 전해지지 않고 그 이름만이 전해지고 있으나 12곡의 제목인 ‘하가라도(下加羅都), 상가라도(上加羅都), 보기(寶伎), 달이(達已), 사물(思勿), 물혜(勿慧), 하기물(下奇物), 사자기(師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상기물(上奇物)은 당시 대가야연맹을 형성했던 소국 또는 지역명으로 농경문화에 맞추어 상징화된 국가 예악으로 추정된다. 우륵이 12곡을 지었을 당시 가야의 정세는 매우 불안정하였는데 가야가 어지러워지자 우륵은 가야금을 들고 진흥왕이 통치하던 신라로 건너간다. 우륵의 연주에 크게 감동한 진흥왕은 그를 국원에 안치하고 신라의 악사인 계고, 법지, 만덕 세 사람에게 우륵의 음악을 배우라 명한다. 이에 신라의 대신들은 가야를 망친 망국의 음악은 본받을 것이 못 된다며 크게 반대를 하지만, 진흥왕은 가야의 패망은 가야의 왕이 음란한 까닭이지 그 음악은 죄가 없다고 하여 우륵이 전수한 가야의 음악을 신라의 궁중음악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가야금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우륵에 의해 6세기경 가야에서 발명되었다고 하나 여러 고대 유물을 통해 기원전 1~2세기까지 그 기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신라 역시 우륵이 건너간 이전부터 신라금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는데 당시의 신라금은 현재 일본의 왕실 창고인 정창원에 ‘시라기고또(新羅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다. 일본의 나라 시대인 809년 신라 악사들에 의해 전해진 이 신라금은 현재의 풍류가야금, 즉 정악가야금인 법금과 그 모양이 흡사하다. 이처럼 신라금이라는 이름으로 가야금과 흡사한 모양의 악기가 신라 시대에도 존재했으나 가야금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당시 우륵의 음악에 대한 영향력과 가야금의 기원을 가야국으로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가야금은 가장 오래된 전통 가야금인 풍류가야금(법금 또는 정악가야금)과 19세기 말 민간음악을 연주하던 산조가야금, 그리고 1960년 줄의 개수를 달리해 제작한 개량 가야금이 있다. 풍류가야금은 정악을 연주하는데, 바른 음악이라는 뜻의 정악(正樂)은 역사적으로 중국 송나라와 고려, 조선 시대 궁중음악을 통칭하여 일컫는 말이지만 현재는 넓은 의미로 민간에서 발생한 민속 음악과 반대되는 의미로 조선의 궁중과 사대부들에 의해 연주되던 모든 음악을 말한다.
풍류가야금의 제작방식 역시 고대로부터 이어진 제작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조들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여덟 가지 물질이 우주를 구성한다고 여겼는데 그것은 쇠, 돌, 명주실, 나무, 대나무, 도자기, 바가지, 그리고 가죽이다. 가야금 또한 이 여덟 가지 물질 중 나무와 명주실과 더불어 우주를 담고 있다. 가야금의 몸통은 오동나무로 만들고 12줄은 명주실로 만든다. 줄을 지탱하는 안족 또한 호두나무나 벚나무, 배나무로 만들고 줄은 오른손이 놓이는 혈침 아래 돌괘라고 부르는 작은 나무 실패에 고정하고 왼쪽으로는 면사를 꼬아 만든 부들이라고 부르는 밧줄에 맨다. 몸통에 쓰는 오동나무는 자연에서 수십 년 이상 된 질이 좋고 결이 촘촘한 것을 선별해 자연 상태 그대로 두어 비바람과 햇빛 속에 그대로 최소 5년 이상을 둔 다음 그중 뒤틀림이 없는 것을 골라 손 대패로 밀어 원형을 잡은 후 인두질로 마감한다. 또한 풍류가야금은 19세기에 생긴 산조가야금과는 달리 오동나무 한 통의 속을 그대로 파내어 공명통을 만들고 이음새 없이 제작한다. 어떠한 인공적인 가공도 하지 않는다. 가야금 줄 또한 질 좋은 누에에서 뽑은 명주실을 수십 겹 꼬아 만드는데 가장 굵은 줄은 저음을, 가장 가는 줄은 고음을 낸다. 이 줄은 기러기 발을 닮았다고 하여 안족(雁足)이라고 부르는 나무 기둥 위에 올려놓고 이 안족을 움직여 음의 높낮이를 조율한다. 또 줄을 매단 부들은 가야금의 하단, 양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양이두(羊耳頭)라 부르는 곳에 매듭을 지어 고정한다. 가야금 12줄은 일 년 열두 달을 상징하며 가야금의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그리고 풍류가야금의 뒤에 있는 하나의 큰 공명통은 세계의 공허함을 나타낸다. 이렇듯 가야금이라는 악기 하나에 동양의 사상과 음양의 원리, 그리고 우주와 수학을 표현했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은 음악을 떠올릴 때 서양음악을 떠올린다. 하지만 천오백 년도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한 우리의 악기 속에는 우리 선조들의 사상과 정신, 그리고 과학이 담겨 있다. 풍류가야금을 통해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이 느끼는 날이 오길 바란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