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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가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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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p 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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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숙 일상


오랜만에 한국식당에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얼음과 물이 가득 채워진 컵이 하나씩 놓인다. 아뿔싸, 물 안 줘도 된다고 미리 말을 안 했구나. 나는 웨이트레스에게 말했다. 여기는 물 마실 사람이 없으니 가져다가 다른 손님에게 주면 좋을 것 같네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럴까요? 알고 봤더니 웨이트레스가 아니고 주인이란다. 그래서 주문받으러 온 그녀에게 내가 다시 말했다. 요즘 캘리포니아가 무척 가물어요. 앞으로는 물을 원하는 손님에게만 제공하면 어떨까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깨우쳐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나도 고마웠다. 나의 오지랖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받아들여 줘서.


지난 주말에 미국식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여느 식당이나 다를 바 없이 물과 얼음이 담긴 컵이 놓인다. 우리가 주문한 음료는 맥주. 물을 마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른 테이블을 살펴봐도 같은 상황이다. 아침에는 보통 주스나 커피, 저녁에는 맥주나 와인을 찾지 물을 마시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렇게 손님들이 입도 안 댄 물이 얼마나 많이 버려질까.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물을 제공하면 좋을 텐데. 캘리포니아가 가면 갈수록 가물다. 지난 몇 년, 비다운 비가 한 번도 안 왔다. 우리 집은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앞과 뒷뜰의 잔디를 모두 걷어내고 작은 화초 몇 포기를 심은 후 자갈을 깔았다. 또한 변기 모두를 절수형으로 교체했다. 소변을 서너 번 본 후 플러쉬를 하는 등 물을 절약해보려 안간힘을 썼는데 그것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서. 절수형으로 교체한 후에는 눈에 뜨이게 물값이 낮아졌다. 물값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물이 아까와서였는데 이대로라면 일 년 안에 변기값은 빼고도 남을 것 같다.


부엌 싱크대 밑에 큰 들통을 갖다 놓은 지는 오래전부터이다. 쌀 씻은 물, 야채 씻은 물 등은 무조건 모아서 나무와 화초에 준다. 한국의 친구 영선이는 인간들에 의해 지구환경이 자꾸 파괴되는 사실을 걱정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탁기에서 나오는 맑은 물을 받았다가 청소할 때 쓰는 등 물자 절약을 통해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나는 생각했다. 내 주위에도 영선이 같은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 혼자 이렇게 애를 쓰는 게 부질없어서다. 곳곳에서 여전히 물 낭비가 계속되고 있는 걸 본다. 이웃들과 얘기를 나누어보면 여전히 그들은 하루에도 두세 번씩 샤워하고 반나절이나 한나절 입은 옷들과 바짝 말려서 서너 번은 더 써도 될 타올들은 바로 세탁기 속에 던져 넣고 수영장의 물을 매일 꽉꽉 채워 넣고 호스 물을 철철 틀어놓은 채 세차를 한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다 보면 안타깝다 못해 분노가 치솟는 광경을 자주 본다. 양이나 시간을 조절하지 않고 함부로 틀어놓아 진 스프링쿨러. 잔디밭을 흠뻑 적시고도 남아 마구 길로 넘쳐나는 물, 물, 물. 앞으로 가뭄과 혹서는 점점 더 캘리포니아를 강타할 텐데, 이대로라면 종내 먹을 물도 모자랄 위급한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데. 연방 가뭄 모니터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캘리포니아 땅의 90%가 ‘극한 가뭄 지역’으로 분류됐다고 한다. 현재 캘리포니아는 1200년 이래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남가주의 큰 호수 열 다섯 개가 다 말라붙었단다. 북가주의 식수원인 '폴섬 댐'의 수위가 위험할 정도로 내려갔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내 1,500개 이상 저수지 물 저장량이 적정치보다 50% 적은 수준이라니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가뭄에 겹쳐 폭염에 따른 산불이 도처에서 기승을 부린다. 매해, 극렬하게 일어나는 산불은 치솟는 기온에 의한 건조한 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컬럼비아대 러몬-도허티 지구관측소의 제인 윌슨 볼드윈 연구원은 "지표면이 건조하면 스스로 식을 수가 없어 더욱 뜨거워진다"며 가뭄과 결합한 폭염이 지표면과 대기의 순환 작용에서 이례적인 극단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도 이 가뭄과 극한 더위는 완화되지 않을 전망이란다.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재산세와 가장 높은 판매세와 가장 높은 소득세와 가장 높은 개솔린 가격을 기록하는 캘리포니아. 어딜 가나 드글드글한 노숙자들에 무조건 불체자 및 저소득층 위주인, 중산층은 죽어라 죽어라 하는 정부 정책인 캘리포니아. 그런 모든 악조건을 감수하며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날씨였는데 이제는 아닌 것 같다. 캘리포니아, 정말로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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