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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고 싶어 흐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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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v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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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엘리자베스 김 (좋은나무문학회장)

얼마 전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온실 가스를 줄이는 방법으로 이산화 탄소 량과 메탄 사용을 줄이자고 약속들을 하였지만 이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해 보인다. 내가 대단한 환경론자도 아니기에 환경론 운운하기에는 별로 자격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철저한 분리수거를 하거나 깨끗한 지구를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고는 있다.

코비드가 시작된 지 일 년 반이 넘어가고 백신들을 맞게 되자 어쩔 수 없는 위드 코로나 (With Corona)시대로 여행이 다시 활발해 지고 있다.특히 크루즈 여행의 안내 책자가 끊임없이 배달된다. 5월에 시작되어 9월 말이면 끝나는 알래스카 관광 기간 동안 그곳에 다녀가는 크루즈 배만 900여 척이 된다고 하니 놀라울 정도로 많지 않은가?

지구 온도 상승화를 막자는 뉴스를 보면서 처음 갔었던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생각했다. 그 여행은 자동차와 배, 그리고 시애틀에서돌아올 적에는 기차를 이용했던 멋진 여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다에 떨어져 내리는 빙하 조각을 보면서 지구의 온난화를가장 심각하게 느꼈던 여행이기도 했다. 내가 택했던 항로는 시애틀에서 떠나고 도착하는 7박 8일 여행이었는데 첫 도착지 Juneau에도착하기 위해서는 트레시 암(Tracy Arm)이라는 협곡을 지나가게 된다.

만년 빙하를 보기 위해 배의 10층 꼭대기 가장 앞쪽 유리창에 앉아 밖을 내다보니 협곡 양쪽으로는 끝없는 빙벽이 계속되고 있었다.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들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호화찬란한 배를 타고 넘쳐나는 음식을 먹으며 관광을 하고 있는 것이 빙하 균열의 한 주범이기도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한 적이 있었다. 또한 Juneau에 도착 후 고래를 보기 위해 관광버스를 타고 통가스 협곡을 지나갔는데 이 곳 역시 거대한 빙하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곳은 관광객이 바로 앞에까지 갈 수 있도록 전망대등 모든 시설이 잘 되어있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빙하는 갈라져 떨어져 내리기도 하고 바로 옆 에는 녹아서 내려오는 물은 폭포수처럼 세차게 흘러내리고 있었다.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일년에 125피트씩 빙하가 줄어든다고 한다.



주차장이 있는 자리도 50여 년 전에는 빙하의 일부였다고 한다니 심각성이 실감이 났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풍경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프리즘 현상으로 보여지는 파란 색과 설산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안개는 인간들만 없다면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디론가 흘러가는 빙산을 바라보며 류시화 시인의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사라지게 한다” 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지구 온난화를 계속 방치한다면 <인간의 이기적인 기쁨을 위해서 천 개의 슬픔을 잉태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이 끊임없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이기심과 자만심의 결과는 자연은 인간의 존재를 위한 필수적인 하층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즉인간을 위해서는 자연도 종속적이라는 이 인식이 타당하기나 한 것인가? 이 세상 만물이 저 혼자 각각 존재하는 것 같고 인간은 모든 만물의 가장 높은 곳에서 다스리는 것 같지만 미상불 저 혼자 자란 나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존재감의 상승은 다른 존재와 나란히 평행선을 유지할 때 비로서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고 생명의 진정한 가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우리는 꽃과 바위와 바람의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릴까? 부감법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 본다면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가 보일 것이다. 파헤쳐지는 아마존 산림, 가뭄으로 인해 사막으로 변해가는 숲과 어디론가 흘러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빙산들이 보일 것이다. 먹을것 구하지 못해 빙산 위에서 사경을 헤매는 Polar Bear들과 인공 댐을 뛰어 넘지 못해 회귀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연어가 날것으로 보일 것이다. 또한 물 조금 얻기 위해 커다란 물동이를 이고 수 십 리를 맨 발로 걸어 가는 아프리카 어린아이들도 보일 것이다. 아! 그러나 어쩌랴 이러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태고를 간직한 알래스카를 가고 싶은 것이다. 눈 덮인 산과 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듯한 섬들과 유영하는 험프리 고래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또한 시애틀에서 돌아올 때 이용했던 앰트랙 역시 너무 그리운 것이다. 조용한 독실 캐빈의 창가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산과 호수도 바라보며 그리고 가끔 들려주는 기적소리가 다시 듣고 싶은 것을 어찌하랴. 그렇다면 자연과 인간들의 이러한 열망 역시 공존, 공생 할 수는 없을 것인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의미를 지도자들에 앞서 평범한 우리들이 먼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인 것 같다. 11_2021(elkimsocie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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